극동국제군사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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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국제군사재판(極東國際軍事裁判, 영어: International Military Tribunal for the Far East, IMTFE)은 제2차 세계대전과 관련된 동아시아의 전쟁 범죄인을 1946년 5월 3일부터 1948년 11월 12일까지 약 2년 반에 걸쳐 심판한 재판이다. 도쿄 전범재판(東京戰犯裁判, 영어: Tokyo Trials, Tokyo War Crimes Tribunal, 일본어: 東京裁判)이라고도 한다. 60여 명 이상의 전쟁 범죄 용의자로 지명된 사람 중 28명이 기소되어, 판결 이전에 병사한 사람 2명과 소추가 면제된 1명을 제외한 25명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 재판은 뉘른베르크 재판과 유사하다는 의미에서 ‘뉘른베르크 재판의 극동아시아 판’이나 ‘또다른 뉘른베르크’라고 불리기도 한다.

전범 재판 법정을 설치한 법적 근거는 직접적으로는 일본1945년 9월 2일에 조인한 항복 문서였다. 일본은 이 문서에서 포츠담선언의 조항을 확실히 이행한다고 약속했고, 포츠담선언 제10조는 '포로를 학대한 자를 포함한 전쟁 범죄인에 대해 엄중하게 처벌한다'고 돼있다. 법정은 도쿄 이치가야의 구 육군사관학교 2층 대강당에 설치됐다. 이 건물은 전시에 일본 육군성과 참모본부로 사용됐다.

사형 - 전원 집행방식 교수형. 총 7명

종신형 16명

유기금고형 3명

판결 전에 병사 2명

소추 면제 2명



International Military Tribunal Ichigaya Court.jpg
재판관들
극동국제군사재판의 피고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