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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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야군(金野郡)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남도 남부에 있는 이다. 본래는 영흥군(永興郡)으로 불리던 지역이다.

서쪽은 요덕군고원군, 북쪽은 정평군과 접하며, 동쪽은 동해에 면해 있다.

서쪽에는 낭림산맥의 높은 산들이 있으나 동해와 접하는 동쪽으로 갈수록 점차 낮아져 평야를 이룬다. 가장 높은 산은 정암산(514m)이다. 주요 강으로는 용흥강이 있다. 송전만(松田灣)에 있는 몇 개의 섬들을 포함한다. 전체 군 면적의 약 30%가 삼림이다.

바다와 접하여 기후는 위도에 비하여 온난한 편이다.

이 군은 남옥저(南沃沮)에 속해 있다가 서기 56년 태조왕의 정벌로 고구려에 복속되었다. 6세기 중엽에는 잠시 신라 진흥왕이 점령하였다. 발해가 현재의 북청남경 남해부(南京南海府)를 설치하면서부터 발해 영토로 편입되었다가 고려가 세워진 후 고려 영토에 편입되었다.

고려 초에는 화주(和州)라 불렸으며, 천리장성이 세워진 북방 접경이었다. 1258년몽골에 점령당해 이 지역에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가 설치되었다가 공민왕 집권기인 1356년 수복하고 화령부(和寧府)라 하였다. 이곳은 이성계의 출생지로, 조선 태조 이성계는 화령(和寧)을 국호로까지 검토했었다. 조선 시대 이후로는 영흥군(永興郡)이라 불렸다.

1952년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영흥군의 일부가 인흥군 및 요덕군으로 분리되었다가 1974년인흥군이 다시 흡수되었고, 1977년에 영흥군에서 금야군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논농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쌀 외에 옥수수, , 과일이 재배된다. 항구는 없고 해안가를 따라 소규모 어업이 행해진다.

기계 산업이 잘 발달해있다. 또한 광산에서 갈탄, 흑연, 금이 채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