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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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포시(南浦市)는 한반도 북서부 해안에 위치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항구 도시이다. 이 도시의 남포항은 수도인 평양과 해외를 연결하는 관문이자 국제 무역항으로 일찍이 항만 교통이 발달하였으며, 1986년서해갑문이 건설되었다.

남포항과 인근에 와우도해수욕장과 와우도유원지, 남포여관 등의 관광 시설이 발달했으며, 남포수산물사업소, 남포수산물가공공장, 와우도협동농장 등의 1차 산업시설, 무역·금융기관도 발달해 있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대동강 하구 북쪽에 있는 항만 도시이다. 동쪽으로는 평양시, 서쪽으로는 황해, 북쪽으로는 평안남도, 남쪽과 남동쪽으로는 대동강을 경계로 황해남도황해북도와 접한다. 주로 대륙성 기후를 띠며, 넓은 평야를 가지고 있지만 강수량이 적어 농업에 유리한 환경은 아니다.

기후는 대륙성 기후이지만 온화한 편이다. 연평균 기온은 10.3°C, 1월은 -6.8°C, 8월 25.1°C, 최고 기온은 37°C(1919년 8월), 최저 기온은 -23°C(1917년 1월), 연강수량 944 mm이다.

조선 시대까지 삼화현(三和縣)의 작은 어촌에 지나지 않았지만, 1894년 청일전쟁으로 일본군의 병참기지가 되었다. 1897년에 개항장으로 지정되어 삼화부(三和府)로 승격한 후 급속히 성장했다.

남포(南浦)는 삼화현(三和縣)의 작은 어촌이었던 '남포 마을'에서 유래되었는데, 이는 삼화현의 남쪽 포구라는 뜻이다. 즉, 이 지역에 있던 증산(甑山)의 남쪽에 있던 포구라서 증남포(甑南浦)로 불렸으며, 일본 제국청일전쟁청나라 군대를 진압하고 남포에 상륙하였다고 하여 누를 '진(鎭)'자를 붙여 진남포(鎭南浦)라 칭하였다.

1949년에 일제식 행정구역명 청산 과정에서 '진(鎭)'자를 떼어버리고 남포시(南浦市)로 시의 이름을 변경하였다.[9] 그러나 대한민국이북5도위원회 평안남도에서는 여전히 1945년 광복 당시의 이름인 진남포시로 칭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부터 평양의 외항으로서 북한 최대의 무역항이며, 무역액은 부산, 인천에 이은 3위였다. 또 정련소를 시작으로 유리, 조선, 화학공업이 발달했으며 어업도 번성했다. 현재는 유리, 기계, 유색 금속류가 중심 산업이다. 합작기업인 평화자동차에서 승용차를 생산하고 있고, 1990년대 중후반에 대우그룹남포공단에서 의류봉제공장을 운영하였다.

대동강의 하구에는 서해갑문으로 불리는 거대한 하구 댐이 건설되어 있다. 댐 호수 내부는 담수화되어 있고 제방 위에는 철도와 도로가 만들어져 대안을 서로 연결하며 남포항으로 들어가는 대형선이 통과하기 위한 갑문도 여러개 설치되어 있다. 제방은 치수와 수운·교통을 위해서 건설된 것으로, 1980년대에 조선인민군 등을 투입해 대대적으로 공사가 진행되어 1986년에 완성했다. 이 거대 공사는 김정일의 지도 덕분으로 여겨져 조선중앙방송의 텔레비전 뉴스에도 자주 등장하고 있다.

서해안에서 유일하게 관광객이 드나들 수 있는 지역으로 남포를 관광도시로 개발하기 위해 와우도에 신시가지를 건설했다. 와우도 해수욕장은 원산의 송도원 해수욕장과 함께 북한이 개방하고 있는 대표적인 해수욕장이나 외국인의 출입도 아직은 자유롭지 않다. 유물·유적으로는 고구려 벽화 무덤인 덕흥리 벽화 고분과 대안리 제1호 벽화 고분, 강서 대묘, 황룡 산성 등이 있다.

남포시는 5구역 2(항구구역, 와우도구역, 강서구역, 온천군, 천리마구역, 대안구역, 룡강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2004년평안남도 관할의 특급시로 변경되었고, 2구역 내의 36동 15리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2010년 강서군, 천리마군, 대안군은 각각 구역으로 개편되었다.

중등 교육기관으로 람포시학생청소년궁전과 람포혁명학원, 남포중학교가 있다.

1998년 12월에 청년영웅도로(평양-남포간 고속도로)가 착공되어 평양시를 연결하고 있다. 또한 남포항이 해상교통의 중심을 이룬다. 철도 평남선이 연결되어 있다.

남포의 위성사진. 동서로 흐르는 것이 대동강, 강 북안이 남포 시가지, 왼쪽 끝에 있는 댐이 서해갑문
진남포부 휘장
서해갑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