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널드 레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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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널드 윌슨 레이건(영어: Ronald Wilson Reagan, 문화어: 로날드 레간, 1911년 2월 6일 ~ 2004년 6월 5일)은 미국의 40대(1981년 ~ 1989년) 대통령과 33대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낸 정치인이다.

레이건은 일리노이주 화이트사이드 카운티에 있는 탬피코에서 태어났고, 일리노이주 리 컨트리에 있는 딕손에서 자랐으며, 일리노이주 유레카 대학에서 경제학사회학으로 문학사를 취득했다. 졸업 후에 레이건은 처음으로 일리노이 주를 떠나 아이오와로 가서 라디오 방송국에서 일했으며, 1937년에는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로 자리를 옮겼다.

1911년 일리노이주 탬피코에서 가난한 구두 판매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932년 유레카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아나운서로 일했다.

1937년 할리우드에 들어가 1964년까지 《Kings Row》(1942년) 등 약 50편의 영화에 출연하였으나 특별한 주목은 받지 못했다. 1947년 미국노동총연맹 산하 영화배우협회 회장에 선출되었다.

처음에는 민주당의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지지했으나, 1950년대 초부터 차츰 보수적 입장으로 기울어졌다.

1949년에는 제인 와이먼과 이혼했고 3년뒤인 1952년낸시 데이비스와 재혼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공군 기지의 부관으로 종군했고, 1962년 공화당에 가입했고, 경제적 자유주의자로 증세와 재정지출 확대에 매우 비판적이었다.[1]

1966년 캘리포니아주의 주지사로 당선되어 조세감면, 복지제도의 축소, 고등교육정책 등을 추진하였고, 캘리포니아 주의 재정은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했다.

1968년1976년 공화당 대통령후보로 나섰으나 패하였고, 1980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에 지명되어, 미합중국 제40대 대통령 선거에 나서 경제불황으로 인기가 떨어지던 민주당의 지미 카터 대통령을 이겨 당선되었다.

당시 미국은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발생했는데 기존 케인스 경제학으로는 설명을 할 수 없는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기현상이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집권당 내부에서도 상당한 세력의 반대가 있었지만 임기초부터 방만한 재정지출 축소와 대규모 감세를 단행했다. 또 가격과 경쟁을 정부에서 통제하고 관리감독하는 틀 자체를 폐지시켜버렸다. 대표적인 사례가 항공기 산업인데 당시 미국의 항공사는 민간 업체였지만 항공요금은 정부에서 가격을 통제했다. 항공사들은 가격경쟁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할인행사나 기내식 서비스로 서로 경쟁을 하려고 했지만 레이건 정부 이전까지만해도 이런 기내식 서비스나 할인권 발매 같은 경쟁도 금지시키고 동일하게 운영하게 늘 관리감독을 했다. 레이건 정부에서 산업부분에 경쟁체제를 도입한 후 항공사들끼리 가격경쟁이 일어나면서 항공권 가격은 일제히 하락했다. 이 저렴한 항공권 때문에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항공기 산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이런 경쟁이라는 개념은 지금은 매우 상식적인 일이지만 냉전시기였던 당시만해도 경쟁이라는 개념은 금기시하던 시대였다. 물론 레이건 정부의 경제적 자유주의 정책을 통해 미국은 스태그플레이션을 벗어났고 동시에 침체한 경기를 활성화해 엄청난 경제 호황을 누리게 됐다는 건 수치상으로 증명이 된다. 문제는 경쟁에서 밀려난 소수의 계층이 존재한다는 점인데 레이건 정부는 이런 계층에 대해서는 소홀하게 인식했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1981년 3월 30일에는 힐튼 호텔에서 노동계 지도자들과 오찬을 마치고 떠나던 도중 정신질환자였던 존 힝클리(John Hinckley)에게 저격을 당했으나 다행히 총알이 심장에서 12 cm 떨어진 곳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하여 가까스로 목숨을 건져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최초로 테쿰세의 저주를 피해간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이 저격사건으로 인해 경호원이었던 팀 매카시(Tim McCarthy)도 몸으로 레이건을 막아 부상을 당했으나 회복되었다.[2]

당시 존 힝클리는 범행 이유에 대해 '당시 유명 영화배우였던 조디 포스터(Alicia Christian Foster)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였다.'고 범행 이유를 자백하였고, 정신병을 앓고 있었던 점과 대통령이 무사하다는 점이 정상 참작되어 1982년, 무죄 판결을 받고 세인트 엘리자베스 정신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레이건은 대통령으로 재임하면서 보수적이고 강경한 국내 내치 정책과 국외 외교 정책을 펼쳐 1984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 월터 먼데일에게 압승을 거두면서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조세감면과 사회복지지출을 억제한 ‘레이거노믹스’의 결과 재정 및 무역 적자를 초래했고 대외정책에서 레바논 파병과 리비아 폭격, 냉전체제가 공산권의 사멸로 끝났으니 국방비를 복지비용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비평을 억누르려는 그레나다 침공, 니카라과 반군지원 등으로 제3세계 국가들에게 위협을 주었고 포클랜드 전쟁에서는 우방국인 영국을 옹호했으며 아르헨티나를 테러집단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인하여 중남미에서는 레이건이 마가렛 대처의 정부라는 소문을 퍼뜨리는 등 레이건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1986년 '이란 - 콘트라 사건'으로 인기가 떨어지자 소비에트 연방에 대해 유화정책을 펴기 시작하였다. 1987년 12월에는 소련고르바초프 서기장과 '중거리핵전력폐기조약'(INF Treaty)을 맺어 냉전을 종식시켰고 1988년 대통령선거에서는 부통령이었던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를 도와 공화당 재집권에 성공했으며 1989년에 퇴임하였다.

미국 대통령으로서 재임시절 여러번 방한 한 적이 많았었고 한국에게 관대한 외교적인 노선을 자주 보여 왔다. 박정희 대통령의 핵무장 프로그램과 미사일 개발을 중단시키고, 대한민국과 굳건한 한미공조를 이뤄냈다.

그는 공화당을 더욱 강경한 보수주의로 이끌었던 미국 보수주의운동 진영에서 배출한 최초의 대통령으로,[3] 미국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많은 나이인 70세의 나이로 취임한 대통령이기도 했으며, 최초로 이혼 경력이 있는 미국 대통령이기도 하였다. 그 후, 1989년, 조지 H. W. 부시는 대통령이 되고 난 후, 그는 퇴임하고 자신의 고향인 캘리포니아 자택으로 돌아갔다. 1992년, 대통령 선거가 다시 돌아왔지만 빌 클린턴이 당선되고 조지 H. W. 부시는 결국 낙선되었다. 하지만 1993년, 조지 H. W. 부시는 퇴임을 앞두고 로널드 레이건을 대통령 자유 훈장을 수여했다.

1994년 11월 레이건이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뇌의 퇴행성 질환의 하나로 의식의 혼탁과 기억 장애 등의 증상을 유발하는 이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기를 바랬고, 이 병의 치료 방법을 찾기 위해 1995년 그의 부인 낸시 여사와 함께 국립 알츠하이머병 재단과 함께 로널드 낸시 레이건 연구소(Ronald and Reagan Research Institute)를 창설했다. 1997년 10월에는 자신의 대통령 재직 사실도 모르고, 정신 혼미와 발작증상 등이 나타났으며, 1999년에는 신체기능이 급속히 악화되었다. 레이건은 파킨슨병이 악화된 이후로는 대중과의 노출을 일체 차단한 상태로 투병생활을 해왔다. 낸시 여사는 2001년 가진 인터뷰에서 "내 남편은 사람들이 옛날의 레이건으로 기억해주길 바랄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며 투병상태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2004년 6월 5일, 10년간 투병해 온 그는 캘리포니아의 자택에서 폐렴 합병증으로 향년 93세의 일기로 서거하였다. 레이건의 시신은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치되었다.

2011년, 갤럽(Gallup)의 여론조사에서는 미국인이 생각하는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레이건이 19%를 득표하며 1위를 기록했다. 2위는 14%를 기록한 링컨이었다.[4]

사회학자 송호근은 기술관료적 성격을 갖는 정치인이라면 불가능했을 사회혁신을 특유의 정치력으로 밀어붙인, "카리스마적인 정치지도자" 중 한 명으로 레이건 대통령을 언급했다. 노사협력 제도를 창안해 정착시키고, 사회적 투명성과 합리성을 증진하는 제도는 물론 상호신뢰를 높이는 각종 제도를 도입했던 선진국 지도자들 중 하나라는 것이다.[5] 그러나 그가 집없는 사람들을 여럿 만들었다는 점, 교도소 민영화로 인해 미국 내 전과자 비율을 10%까지 상승시켰다는 점, 공용 정신병원을 없앴다는 점에서 그는 비판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 기록은 도널드 트럼프가 만 70세의 나이로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깨졌으며,
2020년 11월 9일 조 바이든이 78세의 나이로 46대 대통령에 당선이 되면서 역대 3위로 밀려났다.

레이건은 대통령 재임시절 단 한권의 책을 썼는 데, 소논문 형식으로 쓴 《낙태와 국가의 양심》이다.[6] 이 저서에서 그는 "노예제를 폐지하지 않고 미국의 자유 공화국이 완전하지 않았던 것처럼, 태아의 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하지 않는 나라는 결코 자유국가로 살아남을 수 없다"라고 경고하였다.

소련 고르바쵸프와 정삼회담을 하는 레이건 (1985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연설하는 레이건 (1987년)
퇴임을 앞둔 미국대통령조지 H. W. 부시1989년에 퇴임한 미국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에게 대통령 자유 훈장을 수여하는 모습 (1993년)
레이건의 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