뱌체슬라프 몰로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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뱌체슬라프 미하일로비치 몰로토프(러시아어: Вячеслав Михайлович Молотов, 본명: 뱌체슬라프 미하일로비치 스크랴빈(러시아어: Вячеслав Михайлович Скрябин), 문화어: 뱌체슬라브 몰로또브, 1890년 3월 9일(율리우스력 2월 25일) ~ 1986년 11월 8일)는 러시아 제국언론인·공산주의 혁명가이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정치가, 외교관이다.

1906년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에 입당하였다. 이후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내 혁명파인 볼셰비키파에 가담하였고[1], '망치'(hammer)라는 뜻을 지닌 러시아어 'молоток'에 착안하여 자신의 가명을 '몰로토프'(Молотов)라고 하였다. 1911년에는 당에 의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발령되었으며, 이오시프 스탈린과의 교류가 시작되었는데, 이때부터 볼셰비키의 지하 기관지인 프라우다의 편집인으로서 일하였다.[2] 1914년에는 언론 활동으로 인해 체포를 당하여 이르쿠츠크로 유배를 가 그곳에서 생활하였으며, 1916년 시베리아 유배지에서 탈출하여 수도 페트로그라드로 돌아왔고, 볼셰비키 위원회 위원이 되었다.[2] 1917년에는 레닌의 4월 테제를 지지하고 봉기의 입장을 취하였는데, 그는 4월 테제가 발표되기 전부터 입헌민주당과 나로드니키 잔당인 사회혁명당 등 우익이 주도하는 임시정부를 타도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었다. 한편 그는 이오시프 스탈린과 함께 뜻을 같이 하여 스탈린의 주요 정치적 동지로 인식되었다. 10월 혁명기에는 볼셰비키 군사혁명위원회 위원으로 소비에트의 봉기를 이끌었다.[3]

1926년 정치국원이 되었고, 1930년부터 1941년까지 수상을 역임하였고, 1939년부터 1949년, 1953년부터 1956년까지 외상(外相)을 지냈다. 1939년 그가 외상이었을 때 독소 불가침 조약을 체결,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였다.

특히 그는 제2차 세계 대전이오시프 스탈린의 오른팔로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외교정책을 총괄하였다. 이오시프 스탈린의 사망 이후에는 수정주의를 주창하며 스탈린 격하 운동을 추진했던 니키타 흐루쇼프와 대립하였다가 좌천당하였고, 후에 당적을 박탈당했다. 1984년 소련 공산당 지도부는 그의 당적 회복을 의결하였으며, 이에 따라 당적을 회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