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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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Seoul)는 대한민국수도이자 최대 도시이다. 삼국시대 백제의 첫 수도위례성이었고, 고려남경이었으며, 조선의 수도가 된 이후로 현재까지 대한민국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지이다. 중앙으로 한강이 흐르고, 이를 기준으로 강북강남 지역으로 구분한다. 북한산, 관악산, 도봉산, 불암산, 인릉산, 청계산, 아차산 등의 여러 산들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의 도시이다.

서울의 면적은 605.23 km2대한민국 면적의 0.6%이고, 인구는 약 950만 명으로 대한민국 인구의 17%를 차지한다. 시청 소재지는 중구이며, 25개의 자치구가 있다. 1986년 아시안 게임, 1988년 하계 올림픽, 2010년 서울 G20 정상회의 등을 개최하였다. 2018년 서울의 지역내총생산은 422조원이었다.[1]

"서울" 어원에 관해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하나,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수도를 뜻하는 신라 계통의 고유어서라벌에서 유래했다는 설을 유력하게 받아들이고 있다.[2] 이때 한자 가차 표기인 서라벌 원래 의미에 관해서도 여러 학설이 존재한다. 삼국사기 등에서 서라벌을 금성으로도 표기했다는 점과 신라까지 포함하여 "설[새: 新, 金]-벌[땅: 羅, 城]", 즉 '새로운 땅'이라는 뜻으로 새기는 견해가 있다. 고대-중세 한국어에서 서라벌에 관한 정확한 발음을 확실하게 확인한 게 없으며, 그 발음은 훈민정음 창제 후 "셔ᄫᅳᆯ"이라는 표기가 등장하고 나서 알게 되었다.

서울 한자 음차 표기로는 이십일도회고시, 한경지략, 증보문헌비고[3]의 서울(徐菀), 동사강목, 북학의의 서울(徐蔚), 대동지지의 서울(徐鬱), 앙엽기의 서올(徐兀) 등이 있다.[4] 이처럼 조선 시대 서울은 한양, 한성(漢城) 외에도 서울(셔ᄫᅳᆯ), 경도(京都), 경부(京府), 경사(京師), 경성(京城), 경조(京兆) 등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김정호수선전도에서 알 수 있듯 수선(首善)으로 표기한 예도 있다. 이 가운데 한양과 한성을 제외하면 모두 수도를 뜻하는 일반명사로서 '서울'이 원래는 서울 지역(사대문 안과 성저십리)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닌 수도를 뜻하는 일반명사였다는 방증이다. 국어사전에서는 일반명사 '서울'을 '한 나라의 중앙 정부가 있고, 경제, 문화, 정치 등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도시'라고 정의하고 있다.[5]1910년 10월 1일에 일제한성부경성부로 개칭하면서 일제강점기에 서울은 주로 경성으로 불렸으며, 1945년 광복 후에는 '경성'이란 말은 도태되고 거의 '서울'로 부르게 되었다.[6]

서울 로마자 표기 'Seoul'은 19세기 프랑스 선교사들이 서울을 쎄-울(Sé-oul)로 표기한 데서 비롯했다. 오늘날 프랑스에서는 서울을 'Séoul'로 표기하고, 스페인어권에서는 'Seúl'로 쓰나 모두 '쎄울'로 읽는다. 또, 영미권에서는 일반적으로 'Seoul'로 쓰고 영혼을 뜻하는 단어 'Soul'처럼 '쏘울'로 읽는다. 서울시에서는 이러한 점을 착안하여 2006년 11월 13일 서울시 서브슬로건(Sub slogan)을 《Soul of Asia》로 지정하였다.

서울은 한자어가 아닌 고유어 지명이기 때문에 서울이라는 한자가 존재하지 않아서 중국에서는 서울을 한청(중국어 간체자: 汉城, 정체자: 漢城, 병음: Hànchéng, 한성)이라 불렀고, 1988년 서울올림픽도 한성올림픽이라고 불렀으나, 2005년에 서울시가 서울과 발음이 유사한 서우얼(중국어 간체자: 首尔, 정체자: 首爾, 병음: Shǒu'ěr, 수이)을 서울 공식적인 중국어 표기로 정하면서 점차 이 표기가 확산되어 가는 추세다. 일본어 표기는 '소우루'(ソウル)다.

해방 이후에는 미군정청 문서에서, 서울특별시 영문 공식 명칭은 'Seoul Independent City'였다. 직역하면 "서울독립시"이나, 독립시라는 표현이 어색하다는 한국어 관점에 따라 "특별시"(영어: special city)로 번역한 게 굳어져 'Seoul Special City'로 되었다. 하지만 서울특별시청 홈페이지에서 서울특별시 공식 영어 명칭은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이다.[7]

경조오부도 (1861년)

숭례문 (1900년경)

남대문로 (1937년)

서울은 북위 37° 34′, 동경 126° 59′의 한반도 중서부에 위치하는 분지 지형의 도시이다. 시의 중심으로 한강이 흐르고, 서울 도심에는 남산(270m), 인왕산(338m)이 있다. 시 주변으로 북한산(836m), 관악산(629m), 도봉산(740m), 수락산(641m), 불암산(510m), 구룡산(306m), 우면산(293m), 아차산(295m), 지양산 등이 서울을 둘러싸며 경기도인천광역시와 자연적 경계를 이루고 있다.[10] 동서 간의 거리는 36.78 km, 남북 간의 거리는 30.3km이며, 면적은 약 605.25 km2이다. 서울의 면적은 대한민국의 0.6%이며 남북한 면적의 0.265%이다. 서울특별시의 최북단은 도봉구 도봉동이고 최남단은 서초구 원지동이며 최동단은 강동구 강일동, 최서단은 강서구 오곡동이다.

서울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북한산(삼각산)을 최고점으로 한 고양·양주구릉과 경기평야가 만나는 지대에 있다. 주위에는 북한산(836m)·도봉산(717m)·인왕산(338m)·관악산(629m) 등 500m 내외의 산과 구릉이 자연성벽과 같이 둘러싸고 있는 분지이다. 광주산맥의 한 줄기인 도봉산은 백운대·인수봉·노적봉의 3개 봉우리가 솟아 있는 북한산과 이어져 있고, 그 산줄기는 다시 남으로 뻗어 북악산(342m)을 솟게 하였다. 그리고 북악산에서 동으로 뻗은 산줄기에 낙산(125m), 서로 뻗은 산줄기에 인왕산이 있다. 인왕산에서 뻗은 산줄기 중 남쪽으로 뻗은 것은 숭례문을 지나 남산(265m)·응봉(175m)과 이어져 있고, 서쪽은 무악재의 안부(鞍部)를 지나 안산(296m)과 이어져 있는데 모두 구릉성 산지이다. 한강 남쪽에는 100m 이하의 구릉지가 펼쳐져 있고, 남쪽에 천연의 요새와 같이 서울의 외곽에 솟아 있는 관악산(629m), 청계산(618m), 구룡산(306m), 우면산(293m) 등이 있다. 그 외에 서울 동부에 불암산, 수락산, 망우산, 아차산 등이 있다.[10]

서울의 중심에는 한강 하류가 동에서 서쪽으로 흐르고 있다. 하류이기 때문에 구배는 완만하며 물의 흐름은 느리나, 홍수 때는 상·중류의 유역 지방으로부터 흘러내려오는 물 때문에 수위가 높아진다. 여의도는 상류로부터 운반되어 온 토사가 퇴적된 하중도이다. 한강물은 서울시민의 수돗물로도 공급되는데, 과거에는 뚝섬선유도 등에도 취수장이 있었으나 현재는 잠실 수중보와 팔당 저수지로부터 물을 끌어들여 공급하고 있다.[10] 한강은 일제 강점기까지 별다른 정비가 없었다가, 1960년대 이후 한강을 정비하는 사업이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1968년 밤섬을 폭파한 뒤 여의도를 개발하였고, 1970년부터 1975년까지 잠실 개발계획으로 잠실섬부리도의 남쪽 물길(송파강)을 막아 육지로 만들었다. 1982년 시작된 '한강종합개발사업'을 통해 둔치를 조성하고, 강변 양쪽에 강변북로올림픽대로를 놓았다. 2006년에는 한강 르네상스라는 이름으로 한강 주변을 다시 정비하였다.

한강 이외의 주요 하천으로는 불광천, 안양천, 중랑천, 청계천, 탄천, 양재천, 여의천, 홍제천 등이 있다.

서울의 임야 면적은 2006년을 기준으로 157.35 km2으로, 임야의 51.5%는 국공유림이고 49.5%는 사유림이다. 임야의 분포는 산이 많은 노원구에 17.73 km2, 관악구에 17.53 km2, 강남구에 16.11 km2가 있어서 전 임야의 32.6%를 차지하고 있다. 이 임야의 많은 부분이 개발 제한 구역으로 묶여 있어서 임야는 잘 보호되고 있는 편이긴 하지만, 임야 면적은 매년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11]

서울 도심 주변에는 도심을 관통하는 청계천의 계속된 침식으로 북악산과 남산에서 산기슭이 발달되어 기복이 많은 지형이 되었다. 을지로에 있던 구리개, 조선일보사 앞의 황토현(黃土峴)이란 기복은 가로공사와 도시개발에 따라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없으나, 현재도 율곡로·퇴계로·을지로 곳곳에서 기복을 찾아볼 수 있다.[10] 이러한 기복 때문에 이 지역에는 고개 또는 현(峴)이란 지명이 남아 있다. 이러한 지명에는 충무초등학교 부근의 풀무고개 또는 대장고개(治峴), 인현(仁峴)·종현(鍾峴)·진고개(泥峴), 계동(桂洞) 일대에 관상감현(觀象監峴), 가회동 일대에 맹현(孟峴)·홍현(紅峴)·안현(安峴)·송현(松峴)·배고개(梨峴) 등이 있다.[10] 이러한 지형은 조선시대에 잘 이용되었다. 풍수설에 따라 북악산 기슭에는 경복궁·창덕궁·창경궁·종묘, 인왕산 기슭에는 덕수궁을 지었고, 궁궐 사이는 궁인(宮人)·귀족·고관 들의 저택지로 이용하였다. 이 지역의 침식으로 운반된 토사는 청계천 연안에 퇴적되어 평탄한 시가지를 형성하게 하였다. 따라서 도심지에서 가장 평탄한 곳은 청계천 북쪽의 연안으로 동대문에서 세종로 사이의 종로이며, 이곳에서는 지형의 기복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10] 삼각지로부터 해발고도 20m의 갈월동을 지나면 지형이 차차 높아져서 서울역 앞에 오면 더욱 높아지기 시작하고, 숭례문 부근은 해발고도가 40m 내외가 된다. 이곳은 분수계(해발 36.6m)가 되어, 동으로는 청계천이 동으로 흘러 중랑천과 합류한다.[10]

한반도 내의 선캄브리아기에 형성된 경기 지괴 내에 위치한 서울의 지질은 주로 선캄브리아기편마암류와 이들을 관입한 중생대화강암류로 구성되며, 하천을 중심으로 이 모두를 부정합으로 덮는 제4기의 충적층이 분포한다.[12]

선캄브리아기의 암석 중 가장 주된 것은 서울도폭(1982)에서 정의된 호상흑운모편마암(PCEbngn; Precambrian biotite gneiss)이다. 지형적으로 저지대를 이루면서 강서구 화곡동, 서대문구, 마포구, 용산구, 은평구, 영등포구, 동작구, 강남구, 서초구 등지에 분포한다.[13] 이 암석은 경기편마암복합체의 일부로서, 이 지역 내에서는 가장 오래된 암석으로 기저(基底)를 이루고 있다.[12] 서울 동부지역으로 가면 선캄브리아기의 암석이 조금 더 세분화되어, 논현동 일대에 분포하는 안구상 편마암(PCEagn)이나 강남구, 송파구, 강동구 일대에 흩어져 분포하는 운모편암(PCEms) 등으로 분류된다.[14]

중생대의 화강암은 이 지역에서 흑운모 화강암(Jbgr; Jurassic biotite granite, 서울도폭, 1982) 또는 서울 화강암(Jsgr; Jurassic Seoul granite, 뚝섬도폭, 1981)으로 정의되어 있으며, 서울시 북부인 중구, 동대문구, 성북구, 종로구, 노원구, 북한산 지역에 분포한다. 이 화강암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넓게 분포하는 주요 화강암인 대보 화강암의 일부이며, 선캄브리아기편마암류를 관입하고 있다.[13][12]

신갈 단층한반도 경기 지괴연천군에서 서울특별시와 성남시 분당구 등을 지나 평택시까지 이어지는 연장 130km의 주향 이동 단층이다.[15][16] 추가령 단층대의 일부이며,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 제공하는 지질도 Archived 2021년 10월 24일 - 웨이백 머신에 의하면 도봉구, 성북구, 동대문구, 강남구, 서초구 남부 등 서울특별시 동·북부를 지난다. 특히 한강 이북지역에서는 거의 중랑천[13]을 따라가는데, 이미 뚝섬도폭(1981)에서 그 존재가 간접적으로나마 언급된 바 있다. 도폭 설명서에서 대놓고 신갈 단층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북쪽으로 의정부도폭(2005), 남쪽으로 둔전도폭(1982)으로 이어지고 남-북 주향의 대단층인 것으로 설명되어 있어, 대규모 단층이 지나감을 암시하였다.[14]

화강암은 조립질이면서 다른 암석과는 다르게 절리(節理)가 잘 발달하고 풍화작용에 약하며, 도봉산·백운대·인수봉과 같은 봉우리가 기암절벽을 만들어 서울 특유의 절경을 보여 주고 있다. 홍제동·안암동·창신동·장위동 등지의 화강암은 1990년대까지만 하여도 건축재로 쓰이곤 했다.[17]

화강편마암은 견고한 암석이지만 접착성이 적기 때문에 쉽게 붕괴되어 봉우리를 이루지 못하나, 작은 기복을 이룬 노년기 지형을 나타내주고 있다. 특히 동작동 부근의 화강편마암은 판형으로 쉽게 벗겨져 온돌의 구들장으로 쓰였고, 화강편마암이 풍화되어 된 천호동의 점토는 벽돌과 옹기 제조의 원료로서 많이 쓰였다.[17]

서울은 냉대 동계 소우 기후[18](쾨펜의 기후 구분 Dwa)[19] 또는 온대 하우 기후에 속하며, 습윤 대륙성 기후로 분류하기도 한다. 기온의 연교차가 큰 대륙성 기후이다. 최근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온 상승으로 인해 최한월 평균기온이 영하 3 °C보다 높은 -2.4 °C로 높아져 대한민국 기상청은 온대 하우 기후(Cwa)로 변경했다. 그러나 이는 열섬 현상으로 인한 것으로 외곽 지역은 여전히 -3 °C 미만으로 내려간다는 점과 냉대 기후의 최한월 평균기온 기준을 0 °C 미만으로 간주하는 경우도 많다는 점에서 온대기후와 냉대기후의 중간정도 되는 기후이다. 여름 기온과 겨울 기온의 연교차가 28.1 °C로 매우 크기 때문에, 겨울은 매우 춥고, 여름은 몹시 무덥다. 최근 30년(1991년~2020년) 기준으로 서울의 연평균 기온은 12.8 °C 이고, 최난월인 8월 평균 기온은 26.1 °C, 최한월인 1월 평균 기온은 -1.9 °C이다. 특히 최한월의 평균 기온은 같은 위도 상의 다른 도시에 비해 낮은 편이다. 시내의 기온 분포는 중구와 같이 가옥이 밀집한 곳과 많은 자동차가 배기가스를 뿜으며 지나는 간선도로, 그리고 도심부의 포장도로가 지나는 지역이 가장 기온이 높고, 한강 연안과 가옥의 밀집도가 낮은 지역은 기온이 낮게 나타나고 있다. 도심의 기온은 여름철의 6, 7, 8월 3개월을 제외하고는 해가 거듭될수록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이 상태로 계속 기온이 높아진다고 가정하면 약 100년 간에 평균기온은 1.8 °C, 일 최저 기온의 연평균치는 3.1 °C씩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시내의 습도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17]

계절은 여름이 가장 길고 그 다음 겨울, 순서대로이고 가을이 가장 짧다. 봄은 3월 중순부터 시작되는데 월평균 기온이 5 °C 이상으로 올라가고 날씨는 맑고 따뜻해진다. 그러나 제트기류가 서쪽에서 불어올 때 황사가 일어나기도 한다. 여름은 20 °C 이상의 기온이 계속되며 7, 8월에는 30 °C 내외, 심하면 35°C 이상의 무더운 날씨가 많다. 또한 장마집중호우가 계속되어 많은 비가 내리므로 홍수의 피해가 크다. 가을은 하늘이 높고 맑은 날이 계속되며, 기온은 차차 내려가 선선한 날씨가 시작된다. 겨울은 최저 기온이 0 °C 이하로 내려가는 날이 100일 내외, 최저기온이 -10 °C 이하로 내려가는 날이 29.4일로서, 추운 날이 비교적 오래 지속되고 있다. 눈이 내리는 기간은 12.5일, 얼음이 어는 기간은 16.4일이나 강수량은 여름에 비하면 훨씬 적어 건조한 날씨가 많다. 최근 30년(1991년 ~ 2020년) 기준으로 연평균 강수량은 약 1,417.9mm이나, 1990년에는 2,355.5mm, 1949년에는 633.7mm가 내릴 정도로 연 강수량의 기복이 심한 편이다. 계절별 강수량은 여름철에 892.1mm, 겨울철에 67.3mm로 여름철에 강수가 크게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

한반도는 계절풍 지대에 속하기 때문에 서울은 여름에 남동풍, 겨울에 북서풍이 빈번하게 분다. 도심부에서 도로 위를 부는 도로바람은 남산의 북사면에서 발달한 차가운 공기가 충무로 지하상가 위를 지나 을지로 입구 쪽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퇴계로 2가 부근에서 바람이 가장 강하게 분다.

역대 최저 기온은 1927년 12월 31일의 -23.1 °C, 역대 최고 기온은 2018년 8월 1일의 39.6 °C이다.

시내에는 큰 건물과 공장의 굴뚝에서 내뿜는 매연, 자동차의 배기가스 등의 오염물질이 늘어나면서 태양광선이 제대로 땅에 닿지 못하고 있으며, 따라서 시내에 내리쬐는 일사량은 매년 감소되어 가고 있다. 비행기나 높은 산 위에서 시내를 내려다보면 연기와 먼지를 품은 오염대기층인 연진모자가 상공을 덮고 있어 서울 시야를 나쁘게 하고 있다.[17] 2011년 환경부가 7대 도시의 대기 오염물질을 조사한 결과, 전국의 미세먼지 평균농도는 51㎍/m3이고,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는 49㎍/m3로 나타났다. 2013년을 기준으로 하여 서울시는 전국 16개 지방(서울, 부산, 대구, 경기, 제주, 전남 등)에서 8위(7위: 대구 9위: 전북)를 하였고, 광역시나 특별시 중에서는 4위(3위: 대구 5위: 울산)를 하였다.(중위권) 그러나 최근, 수년 동안 서울시에서는 청정연료 확대보급, 경유자동차 저공해화, 도로비산먼지 청소, 공사장 비산먼지 관리 등과 같은 대기질 개선활동을 집중적으로 전개해 오면서 대기질이 좋아지기 시작했으나, 황해 근처에 위치하고 있는 중국의 수많은 공장에서 뿜어져나오는 매연에 서울의 대기질은 겨울과 봄에 최악을 기록하고 있으며, 미세먼지 농도가 100㎍/m3을 훌쩍 뛰어넘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출처 필요]

하지만 2020년 코로나19 상황과 역대 가장 긴 장마 때문에 서울의 미세먼지는 110일 동안 보통 이하를 기록하기도 하였다.[27]

서울특별시의 행정구역은 25개 자치구와 424개 행정동이 있다. 한강 남쪽에 11개, 한강 북쪽에 14개 자치구가 있다. 2020년 4월말 주민등록 인구는 9,726,787명이다.[28] 가장 인구가 많은 구는 송파구, 가장 인구가 적은 구는 중구이다.

21대 국회의원 선거 기준 49개 선거구로 나뉜다. 주민등록 인구(외국인 제외)에 따라 29만5천 명 미만인 자치구는 1개, 29만5천 명 이상 ~ 59만 명 미만인 자치구는 2개, 59만 명 이상인 자치구는 3개의 선거구를 가진다.

고려 멸망 후 조선이 천도(1394년)한 후 조선 태종 때 인구는 약 10만 명이었으며, 이후 1900년대까지 20만 명 선을 유지하였다.

일제 강점기 이후 서울의 인구는 지방 인구의 도시집중 현상으로 급격하게 늘어나여 과밀화 현상을 빚고 있다. 1919년에 인구 25만 명, 인구밀도 6,874명/km2이었던 것이 1925년에는 인구 34만 명, 인구밀도 9,297명/km, 1930년에는 인구 33만 명, 인구밀도 9,824명/km2, 1935년에는 인구 40만 명, 인구밀도 11,172명/km2에 달하였다. 이에 따라 1936년에 시역을 확장하여 인구는 73만 명으로 증가하고 인구밀도는 5,430명/km2으로 감소하였다. 1945년 광복 당시의 인구는 90만 명, 인구밀도 6,628명/km2이었는데, 외국에서의 귀국, 한반도 북부지역 출신 등으로 1946년에는 인구가 127만 명으로 급격하게 증가하였고, 인구밀도는 9,309명/km2이 되었다. 1948년에는 인구 171만 명에 인구밀도 12,055명/km2으로, 1949년에는 136.05 km2이었던 시의 면적이 268,35 km2로 확장되었고 인구는 142만 명, 인구밀도는 5,284명/km2이 되었다.

1951년에는 한국 전쟁으로 인구가 65만 명, 인구밀도는 2,416명/km2으로 급격하게 감소하였다. 그러나 1953년에 휴전과 환도로 다시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하여 1955년에는 인구 157만 명, 인구밀도 5,869명/km2, 1960년에는 인구 245만 명(전체 인구의 10%), 인구밀도 913명/km2, 1970년에는 인구 543만 명(전체 인구의 18%), 인구밀도 9,013명/km2, 1980년 인구는 836만 명, 인구밀도 13,074명/km2, 1990년에는 1,061만 명, 인구밀도가 15,532명/km2이 되었다.

이렇게 계속 증가하던 인구도 1992년 인구 1,097만 명, 인구밀도 18,121명/km2을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했다. 이는 정부의 서울 인구 분산 정책에 따른 것으로. 서울 교외에 분당·일산·평촌·중동산본 등의 1기 신도시가 개발되었고 이 마저도 포화상태로 현재 운정, 판교, 동탄등 2기 신도시 개발에 따른 이주에 의한 것이다.[29] 계속 감소하던 인구는 2003년 인구 1,028만 명, 인구밀도 16,975명/km2을 정점으로 다시 증가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뉴타운'으로 불리는 서울 시내 대규모 재개발로 인한 인구 유입의 영향이 크다. 2009년 12월말 기준 인구는 10,464,051명, 4,116,660세대이고, 인구밀도는 17,289명/km2이다.

서울의 인구증가를 보면 1960년경부터 대한민국경제성장과 함께 각종 산업이 발전하면서 고용 증대가 이루어졌고 이에 따라 농촌인구가 급격하게 서울로 집중하게 되었다. 서울 지킴자금 농촌에서는 생계가 어려워 무작정 서울로 온 이농 인구 덕분이었다.[30] 서울은 자연증가보다 사회증가에 의하여 과밀화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또한 서울에는 교육기관이 많이 분포하고 있어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은 주로 서울에서 취업을 하거나 생활 터전을 마련한다.[31]

다만, 2010년대 들어 서울의 높은 전세로 인해 서울의 인구순유출 속도가 한국 도시들 중 가장 빠르며, 2016년 5월을 기점으로 서울 인구가 1,000만명 선 아래로 떨어졌다. 사실상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1000만명을 넘어선 서울의 인구가 28년만에 1000만명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2018년 5월 기준으로 서울의 인구는 980만명이다. 서울을 빠져나가는 대부분의 인구는 경기도로 이동하고 있으며, 세종시제주도로의 이동도 이루어지는 역도시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로서, 입법부·행정부·사법부 등 국가의 통치 기관이 집중되어 있다. 종로구에는 청와대정부서울청사를 비롯한 중앙 행정 기관과 헌법재판소 등 국가 중요 기관이 있고, 중구 정동에는 각국의 외교 대사관이 밀집해 있다. 또한 여의도에는 국회가, 서초구에는 대법원을 비롯한 법조 단지가 형성되어 있다.

2014년 서울의 지역내총생산(GRDP)은 327조 6020억 원이며, 실질성장률은 2.2%이다.[32]

삼성, LG, 현대자동차, SK, 롯데 등 주요 대기업의 본사가 있다. 대한민국 GDP의 22%를 창출하고 있으며, 금융 기관의 50% 이상이 집중되어 있다.

서울의 공업은 1919년영등포에 세워진 방직공장을 시초로 한다. 영등포에는 그 외에도 피혁공장과 철도공작창이 지어졌으며, 1940년대 들어서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한 일본의 군수물자 조달을 목적으로 영등포와 용산을 중심으로 군수 산업이 발달하였다. 8·15 광복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잠시 침체 상태에 있었으나, 1962년부터 시작된 국가 주도의 경제 개발로 인해 서울의 공업은 급속도로 발달하였다. 1971년 형성된 구로동 수출산업공단은 섬유·전자기계·고무합성수지제품·금속·광학기기류 등의 생산으로 서울 최대의 산업단지가 되었으며, 인근의 영등포 기계공단과 묶여 경인공업지구를 형성하였다.

1990년대 초까지 용산·영등포·천호동·노원구 등에 공업지구가 형성되어 있었으나, 수도권이 팽창하면서 인천·시흥·안산·부천 등 인근 지역으로 옮겨갔다. 2000년대 들어 첨단산업이 발달하면서 구로동·가산동 지역의 대규모 공단이 디지털산업단지로 탈바꿈하여 현재는 수많은 IT 벤처 기업이 있다.[34]

서울의 상업은 4대문 안 서울 도심인 종로·남대문로·충무로·명동·을지로청계천 등의 상가와 남대문시장·동대문시장·중부시장 등의 시장백화점, 대형 할인점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1960년대 들어 대단위 슈퍼마켓과 연쇄점·지하상가가 시내 요소에 설치되어 새로운 상가를 형성하였다. 전문상가로는 전국에 의류를 공급하는 남대문 의류상가와 동대문 평화시장,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 노량진수산시장, 용산전자상가, 경동시장 등이 있다.[35]

금융지구 여의도 전경

강남 테헤란로

종로구

서울대학교, 서울시립대학교, 서울과학기술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체육대학교 등 국공립 대학교와 연세대학교, 고려대학교, 서강대학교, 성균관대학교(인문사회캠퍼스), 한양대학교, 중앙대학교, 경희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건국대학교, 동국대학교, 광운대학교, 홍익대학교, 국민대학교, 숭실대학교, 세종대학교 등 사립 대학교들이 소재하고 있다. 대학교 40개교, 교육대학 1개교, 방송통신대학교 1개교, 전문대학 12개교 등이 있다.[36]

서울은 대한민국 문화활동의 중심지가 되고 있으며 도서관·박물관·신문사·출판사·방송국·공원과 기타 문화시설들이 집중되어 있다.

서울에는 132개의 국보, 380개의 보물, 61개소의 사적, 11개의 천연기념물, 32개의 무형문화재, 46개의 중요민속자료 등이 있다. 또한 경복궁 등의 고궁과 각종 공원 등이 있어 시민들과 외국 관광객들에게 좋은 휴식처와 관광 명소가 되고 있다. 운동경기장으로는 잠실에 잠실종합운동장, 목동에 목동운동장, 성산동에 서울월드컵경기장이 있다.[36]

국립중앙박물관 등 60여 개의 박물관이 있다.

서울에는 시립 도서관 23개 소가 있으며, 시립 도서관의 경우 대부분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 운영하고 있다. 그 외에도 각 자치구에서 설립한 구립 도서관이 있다. 최근 구립 도서관의 숫자가 늘고 있는 추세이다. 장서(藏書) 100만여 권을 가진 국립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 그외에도 공공 및 사립도서관, 대학도서관 등이 있다.[36]

서울의 도심 지역에는 대형 종합 신문사들의 본사가 몰려 있다. 도심인 중구에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서울신문, 매일경제신문, 종로구에는 동아일보, 한국일보 본사가 있고, 마포구에는 한겨레가 위치하고 있다.

몽촌토성

풍납토성

서울 석촌동 고분군

서울 방이동 고분군

보신각

서울 성곽

숭례문

흥인지문

종묘 정전

헌인릉

서대문형무소

경복궁 근정전

창덕궁 인정전

창경궁 문정전

경희궁

덕수궁

서울시티투어버스광화문을 기점으로 서울의 중심 관광지를 순환하고 있다.

명동 (중구)

인사동 쌈지길 (종로구)

N서울타워 (용산구)

광화문광장 (종로구)

청계천 (중구 · 종로구)

청계광장 (종로구)

북촌 한옥마을 (종로구)

여의도 63빌딩 (영등포구)

연남동 연트럴파크 (마포구)

이태원 (용산구)

코엑스 (강남구)

롯데월드타워 (송파구)

롯데월드 (송파구)

올림픽 공원 (송파구)

한강공원

탑골공원 (종로구)

월드컵공원 (마포구)

양재시민의 숲 (서초구)

봉은사 (강남구)

봉은사 (강남구)

조계사 (종로구)

명동성당 (중구 · 1898년)

명동성당 (중구 · 1898년)

정동교회 (중구 · 1898년)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대성당 (중구 · 1926년)

천도교 중앙대교당 (종로구 · 1921년)


서울세계불꽃축제

서울빛초롱축제

서울은 1986년 아시안 게임, 1988년 하계 올림픽을 개최하였으며 2002년 FIFA 월드컵의 개막전과 4강전을 비롯한 총 3경기가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치러졌다. 서울특별시 송파구에는 1986년 아시안 게임1988년 하계 올림픽의 개막식, 폐막식이 있었던 서울올림픽주경기장과 이를 기념하는 올림픽공원이 있으며, 마포구에는 월드컵공원이 있다. 노원구에는 종합선수합숙훈련장인 태릉선수촌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프로스포츠팀을 보유한 도시이며 특히 프로스포츠 양대 산맥인 프로축구 K리그와 프로야구 KBO 리그에서 1990년 럭키금성 황소LG 트윈스 그리고 2016년 FC 서울두산 베어스의 2차례 동반 리그 우승을 달성하였다.[47]

서울월드컵경기장 (마포구)

서울 올림픽수영장 (송파구)

승용차대중교통지하철, 버스, 택시 등이 주된 시내 교통 수단이다. 주요 환승지로는 1호선 서울역, 영등포역, 용산역,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센트럴시티, 동서울종합버스터미널, 남부터미널, 1,2호선 시청역, 2호선 강남역, 신도림역, 2,4호선 사당역 등이 있다. 2007년 말 기준으로 자동차 등록 대수는 2,933,286대로 수송 분담률은 2006년 기준으로 지하철 34.7%, 버스 27.6%, 택시 6.3%, 자가용이 26.3% 등이다. 1899년부터 운행하던 전차1968년 없어지면서 서울의 대중 교통 수단은 많이 달라졌다. 1966년부터는 시가지의 대폭적인 재개발로 건물의 고층화와 함께 도로의 입체화가 진전되었다. 대중 교통 수단의 재배치는 서울 도시 구조에 매우 큰 영향을 끼쳐왔다. 대표적인 예로 1기 지하철, 특히 당초 계획과는 달리 거대 순환선으로 변경된 2호선이 서울의 공간에 끼친 영향을 들 수 있다.

경부고속도로, 서해안고속도로, 용인서울고속도로 등이 남쪽으로 이어져 있으며,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경인고속도로는 서쪽에 있는 인천광역시와 연결된다. 시 외곽에는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가 둘러싸고 있다. 도시 내부에는 강변을 따라가는 강변북로, 올림픽대로, 내부순환로, 동부간선도로, 서부간선도로, 남부순환로, 북부간선도로 등의 간선도로가 건설되어 있다.

강변북로[48]고양시파주시, 올림픽대로는 인천광역시부천시, 동부간선도로는 성남시의정부시, 서부간선도로는 안양시광명시, 북부간선도로는 구리시와 연결된다. 서울시내의 주요 도로로는 테헤란로, 세종대로, 종로, 강남대로, 시흥대로 등이 있다.

서울에서 버스가 처음으로 운행을 하기 시작한 때는 1928년으로, '경성 부영버스'라는 이름으로 10대를 운영했다. 1949년 17개 회사가 서울시로부터 면허를 받고 버스 운영에 뛰어들었다. 이후로 여러 차례의 확장과 개편을 거쳤으며, 2004년 서울특별시 버스 개편으로 버스 준공영제와 환승할인 제도가 도입되었다. 현재 시내버스, 간선버스, 마을버스, 광역버스 등을 포함한 수백개의 버스노선이 시내를 연결하고 있다.

서울에서 택시1912년에 처음 운행을 시작하였고, 1919년 최초의 택시회사가 설립되었으며, 1926년에는 미터기가 도입되었다. 8·15 광복 후에도 발전을 거듭하여 1970년 콜택시가 등장하고[49], 1988년에는 콜택시 대체용으로 도입된 중형택시[50], 1992년에는 모범운전수가 운전하고 콜택시를 도입하는 등 서비스 수준을 높인 모범택시가 선을 보였다.[51] 또한 2009년에는 소형택시 부활이 결정된 이후 2011년 12월부터 소형택시 70여대가 운행되고 있다.[52][53] 2015년 10월에는 고급택시가 운행을 시작했다. 2020년을 기준으로 서울시 소형택시의 기본요금은 2100원, 중형택시는 3800원, 모범택시는 5000원, 고급택시는 8000원이다.

서울은 한반도 철도의 중심지이다. 서울에서 다른 도시간을 잇는 철도 교통이 골고루 발달되어 있다. 지역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이 나뉘어 있어, 서울역에서는 경부선경전선 KTX, 용산역에서는 호남선·전라선·장항선, 청량리역에서는 중앙선·태백선·영동선 강릉선열차가 출발한다. 그 외에도 영등포역 등의 중간역에서 열차를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인천국제공항에서 인천국제공항철도를 이용하여 서울역까지 접근할 수 있다. 또한 철도관제센터 또한 서울에 위치해 있어 그곳에서 대한민국 전역의 모든 철도를 총괄 관리 및 명령한다.

1968년 서울전차의 퇴역으로 이를 대신할 대중교통수단 건설이 논의되었고, 1974년 수도권 전철 1호선의 개통으로 본격적인 도시 철도 시대를 열었다. 1기 지하철 사업으로 2호선, 3호선4호선이 개통되었고, 그다음 2기 지하철 사업으로 5호선, 6호선, 7호선, 8호선이 새로 건설되어 추가되었다. 이후 9호선이 건설되면서, 2011년 현재 한국철도공사 관할 구간을 제외하고 9개 노선이 운행하고 있다. 서울의 도심과 부도심을 이어주며, 특히 서울 지하철 2호선의 개통은 서울의 공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서울 지하철 5호선의 경우에는 최초로 한강 아래로 터널을 뚫어 운행을 시작했다. 서울 지하철 1호선을 포함한 일부 노선은 한국철도공사수도권 전철과 연계 또는 직결 운행하여 서울 주변의 위성도시들을 연결한다.

동아시아 (일본, 중화인민공화국, 중화민국) 단거리 국제선과, 대한민국 국내선은 주로 김포국제공항을, 나머지 중장거리 국제선인천국제공항을 이용한다. 서울 도심에서 인천국제공항까지는 약 1시간 정도가 소요되며, 인천국제공항철도 또는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접근할 수 있다.

과거에는 뚝섬과 마포에 포구가 있어 번창하였으나, 육상교통이 발달되면서 자취가 사라졌다. 또한 노량도(서울 시흥)·양화도(서울 인천)·한남도(서울 용인)·송파도(서울 광주)·광나루(서울 광주) 등의 나루터가 있었으나 한강대교가 가설된 후부터 옛날의 나루터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한강 개발 이후가 된 후 관광용으로, 또한 통근용으로 수상 교통의 부활이 이루어졌다.

한강종합개발사업의 일환으로 1986년 10월 26일부터 관광용 한강 유람선 운행을 시작했다. 여의도잠실 등 8개 선착장에서 운행하고 있다.[54]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07년 10월 11일부터 한강 수상택시 운행을 시작했다. 여의도잠실 등 한강변 18개 승강장에서 운행하고 있으며, 교통수단 뿐만 아니라 관광용으로 이용되고 있었으나 운항정지 중이다.

서울특별시는 2014년 2월 기준 20개국, 24개 해외 자매도시들과 교류를 하고 있다.[55]


한강양화대교 너머로 보이는 북한산의 풍경
NASA의 위성에서 찍은 서울 사진(2004년)
서울의 주요 산 위치도
서울의 하천 지도
서울 도심
창덕궁가을 풍경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서울대학교 정문에 있는 조형물
여의도 근방을 통과하고 있는 올림픽대로의 모습
서울의 버스
서울시티투어버스
서울역 주변 전경
공항철도 2000호대 전동차 (일반열차, 208편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