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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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공화국(말레이어: Republik Singapura 레푸블릭 싱아푸라[*], 영어: Republic of Singapore 리퍼블릭 오브 싱가포르[*], 중국어 간체자: 新加坡共和国, 병음: Xīnjiāpō gònghéguó 신자포공허궈[*], 타밀어: சிங்கப்பூர் குடியரசு 싱가푸르 쿠디야라수), 줄여서 싱가포르(말레이어: Singapura 싱아푸라[*], 영어: Singapore 싱어포어/싱거포어[*], 중국어 간체자: 新加坡, 병음: Xīnjiāpō 신자포[*], 타밀어: சிங்கப்பூர் 싱가푸르)는 동남아시아, 말레이 반도의 끝에 위치한 섬나라이자 항구 도시로 이루어진 도시 국가이다. 북쪽의 조호르 해협과 남쪽의 싱가포르 해협을 두고 각각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와 약간 분리되어 있다.

1819년 영국동인도 회사가 현 싱가포르 남부에 개발한 항구가 시초이다. 1963년말레이시아 연방의 일원으로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으며, 1965년에 말레이시아 연방 정부와의 다툼 끝에 결국 연방을 탈퇴하여 독립 국가가 되었다.

독립 당시 인구는 160만명이었으나, 꾸준히 늘어 2010년에는 520만명에 이르렀다. 20세기 후반에 초고속 경제 성장을 이룬 나라 중 하나로, 싱가포르 항구는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항구 중 하나이며, 정유시설과 금융산업은 세계에서 각각 3, 4번째로 크다. 2010년 싱가포르의 경제 성장률은 15%로 아시아에서 가장 높았다.[1] 싱가포르는 교육, 의료, 삶의 질, 개인 안전, 낮은 부패, 주거 등 주요 사회 지표에서 91%의 주택 소유율로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또한 세계에서 가장 긴 기대 수명, 가장 빠른 인터넷 연결 속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유아 사망률 중 하나를 누리고 있다.[2]

2011년 기준으로 1인당 명목 국민소득은 5만달러, PPP 환산 국민소득은 6만달러에 달하며, 1인당 외환보유고는 세계 최정상권이다. 싱가포르의 면적은 740km2대한민국서울특별시보다 조금 더 넓고, 부산광역시와 비슷하며 인구는 서울의 절반 정도인 567만명(2015년 말 기준)이다. 인간개발지수는 전 세계에서 11위, 아시아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높은 편이다.

현대 싱가포르 국가의 역사는 19세기 초 건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역사적 증거는 14세기에 싱가포르 섬에 상당한 무역 정착지가 존재했음을 시사한다. 당시 싱가푸라 왕국은 파라메스와라가 통치하고 있었는데, 파라메스와라는 마자파힛에게 추방되기 전에 이전 통치자를 죽였다.

그다음 싱가포르 땅은 말라카 술탄국조호르 술탄국 아래에 들어왔고, 1819년 영국의 정치가 스탬포드 래플스가 싱가포르 섬에 영국인이 무역항을 두는 것을 허용하는 조약을 조호르와 협상한 끝에 싱가포르 식민지를 건설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싱가포르는 1942년부터 일본 제국에 점령당했다. 1945년 일본 제국이 항복하자 싱가포르는 영국 식민지로 되돌아갔으나, 독립하면서 말라야 연방과 합병한다.

싱가포르의 집권 인민행동당과 말레이시아의 동맹당 간의 분쟁 및 사회 불안으로 인해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와 갈라서서 1965년 8월 9일에 독립 공화국이 되었다.

심각한 실업과 주택 위기에 직면한 싱가포르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 제조업 건설, 대규모 공공 주택 단지 개발, 공교육에 대한 막대한 투자에 중점을 둔 현대화 프로그램에 착수했다.

1990년대까지 이 나라는 고도로 발달된 자유 시장 경제와 강력한 국제 무역 링크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번영하는 국가 중 하나가 되었고, 현재 아시아에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가장 높으며[3], 유엔 인간개발지수(UN Human Development Index)에서 9위를 기록하고 있다.[4][5][6]

싱가포르는 63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말레이시아조호르와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데, 북쪽은 조호르-싱가포르 코즈웨이를 통해, 서쪽은 투아스 제2 연결점에 연결되어 있다. 주롱섬, 풀라우 트콩, 풀라우 우빈, 센토사가 주요 섬이며, 가장 높은 산은 부킷 티마 힐로 해발 166미터이다. 본섬의 중심에 위치한 싱가포르 강의 남쪽이 원래 도시의 발당이었으며 현재는 다운타운 코어로 불린다. 이전에 그외 지역은 농장과 열대우림이었으나, 현재는 새로운 도시의 확장과 함께 거주와 쇼핑 그리고 산업단지로 바뀌었다.

싱가포르는 계속적인 간척 사업으로 1960년대에는 581.5km2의 면적에서 현재는 740km2로 확장되었다. 이는 서울(605.25km2)보다 약간 큰 면적으로 부산광역시(770km²)와 비슷하다. 2030년까지 100km2를 더 확장하는 것이 싱가포르 정부의 목표다. 이 과정에서 많은 작은 섬이 본섬과 연결되었는데, 주롱섬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싱가포르는 북위 1도에 위치에 적도와 가깝기 때문에 연중 기온이 높고 강수량이 많은 전형적인 열대 우림 기후에 속한다. 연중 기온은 고르게 아침 최저 23°C에서 낮 최고 32°C를 보인다. 연평균 강수량은 2343.1mm 정도이며 11월에서 이듬해 1월까지 강수량이 많은 편이다. 눈은 내리지 않는다.

싱가포르의 기후에는 에어컨이 매우 중요하다. 싱가포르의 국부로 칭송받는 리콴유(1923~2015) 전 총리는 에어컨을 '싱가포르 성공의 일등공신'으로 삼았다고 한다. 무더운 기후로 업무와 생활에서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총리가 에어컨을 마음껏 틀 수 있도록 한 것이 경제 성장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7]

성문헌법을 가진 영국식 의회 정부의 공화국으로, 행정권이 내각에 있는 의원 내각제이다. 총리가 모든 권한을 위임 받고 내각을 이끌고 있다. 1991년 개정된 의회의원 선거법에서 복수정당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적 투표로 의회가 구성되게 되었다. 다만 의회는 인민행동당의 영향력이 크다.

1959년부터 현재까지 리콴유가 이끌었던 보수주의 정당인 인민행동당이 여당으로 집권하고 있다. 야당으로 싱가포르 노동자당, 싱가포르 민주당, 싱가포르 민주연합 등의 많은 정당들이 있으나 여당의 장기 집권과 강력한 정권의 힘(검열, 게리멘더링(선거구 조작), 민주화 운동 탄압)으로 존재가 미미하다. 이 때문에 공산주의 국가나 사회주의 국가보다 더 강력한 독재국가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리고 인민 행동당의 강력한 독재 체제에 야당들은 정치적인 역할이 엄청 약하기 때문에 보수주의적 일당 독재를 할 수 있으므로, 싱가포르 의회는 오직 인민 행동당의 정권 장악력이 크다는 것이다.

크게 서부, 북부, 북동부, 동부, 중부의 5개 지역으로 나뉘며 퀸즈타운, 센트럴에리어 등 66개 도시 계획 구역으로 이루어진다.

싱가포르의 모든 사법적 권한은 싱가포르 헌법에 의해 대법원과 그의 부속 법원에 부여되어 있다. 대법원은 항소심법원(the Court of Appeal)과 고등 법원(the High Court)으로 구성되며 항소심 법원은 형사 및 민사 사건의 항소심을 수행하고, 고등 법원은 형사 및 민사 사건의 원심과 상소심을 수행한다.[10] 대법원장, 항소심 판사, 사법 위원(Judicial Commissioners)과 고등법원 판사는 총리가 제청한 후보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 총리는 판사를 추천하기 전에 대법원 판사와 협의하여야 한다.

헌법에 의해 사법권은 대법원에 있으나, 인민행동당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다는 비판도 있다.

싱가포르의 법은 영국과 영인도의 법 그리고 영미법(코먼로)에 기반하고 있으나, 집권당인 인민행동당은 다민족 · 다종교 사회인 싱가포르의 국익을 이유로 서양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그대로 따르는 것에 반대하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부분(표현의 자유)은 제한하고 있으며, 수많은 무거운 벌금 체계가 존재한다.[11]

특히, 현재까지 태형이 존재하는 몇 안 되는 국가이며, 엠네스티에서는 싱가포르를 사형률이 높은 나라 중 하나로 보고 있다. 1994년 공공기물파손죄를 지은 미국인 청소년 마이클 페이에 대한 태형 논란으로 미국과 마찰을 빚기까지 하였다.[12]

싱가포르의 태형은 심장병이 없는 50세 이하의 남성을 대상으로 3대에서 24대[13]까지 때리며 21세기 들어서는 기계로 때리기도 한다.

징병제 시행 국가로 2년동안 복무하며, 이후 40세까지 예비군으로 복무한다. 정규군 7만1천600명과 예비군 35만명으로 이뤄져있다. 말레이시아의 침공가능성을 항상 우려하여 국방에서는 신경을 많이 쓴다. 싱가포르 공군의 경우 자국 영토의 협소함과 유사시 전력이 한꺼번에 망실되는 것을 방지하는 목적 및 다국적 훈련교류 차원에서 해외 우방국들과 교류협정을 맺어 자국 공군의 일부 항공기 전력들을 주둔시키고 있다. 싱가포르 공군은 새 기종을 도입 할 때마다 당대 최신기종을 도입하여 질적으로 최고를 추구하고 전략적으로도 위기사항이 닥치면 수동적인 방어태세보단 능동적인 선제공격 작전을 구사하는 능동적인 엘리트 공군을 추구하고 있다.

F-5S 전폭기,E-2C 조기경보기,G-550조기경보통제기,포커50(해상초계기,수송기 2가지 용도로 운용중),KC-135R 공중급유기 6대,KC-130B/H 공중급유기,C-130H 수송기,AH-64D 공격헬기,AS-332/532 헬기,CH-47SD 수송헬기,F-5T 훈련기,M-346 전술입문기,PC-21,A/TA-4SU 훈련기,S-70 해상작전헬기(해군 항공대 운용),A-4SU 공격기는 F-15SG 전폭기에 밀려 이제는 1선 전력에서는 물러나고 있다.

일본과는 2002년 초 전면적인 경제협력협정인 "일-싱가포르 신시대 경제동반자협정(日本・シンガポール新時代経済連携協定, Japan-Singapore Economic Agreement for a New Age Partnership: JSEPA)"을 체결했다. 이로써 싱가포르는 일본에게 최초의 자유무역협정 대상국이 되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수상의 동남아순방(2002년 1월)에 맞춰 체결된 JSEPA는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을 제거하는 자유무역협정(FTA)을 포괄하고 금융, 정보통신기술, 인재 양성 등의 분야를 포함하고 있다. 양국 무역량의 98% 이상에 상당하는 품목의 관세가 철폐(2000년 금액 기준)되어 일본의 싱가포르 수출은 무관세, 싱가포르의 대일 수출은 94%가 제로 관세를 적용받게 되었다.[14]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는 1973년 협정을 기본으로 2005년까지 바탐섬 북부 지역에 관한 분쟁을 완결하기로 합의한 상태이다.[15]

대한민국은 1970년 12월 싱가포르에 통상경제대표부를 개설했다. 이 대표부는 1971년 7월 총영사관으로 승격되었다가 1975년 8월 대사관으로 승격됐다. 양국은 1972년 항공협정을 체결했다. 1979년 11월에는 이중과세방지협정이 체결되었다. 특히 건설업계의 교류가 활발한데 싱가포르의 창이국제공항을 비롯한 많은 주요 건물을 한국 건설업체가 건설하였다.

양국은 서로 10위권 내의 교역 상대국이며, 주로 전자전기제품, 기계류가 수출입 품목이며, 특히 1998년 외환 위기 이후 한국에의 투자가 많이 이루어졌다. 2000년에 정점을 이루다가 줄어들었으나 현재는 다시 늘어나는 추세이다. 대한민국의 대(對)싱가포르 수출은 152억4420만USD, 싱가포르의 대(對)대한민국 수출은 78억4953만USD(각 2010년)에 달하여, 싱가포르는 대한민국에 있어서 제5위의 수출국, 제14위의 수입국이다.[16]

특히 싱가포르 투자청(GIC, Government of Singapore Investment Corporation)은 1999년 잠실 시그마타워, 2000년에는 프라임타워, 서울파이낸스타워, 무교빌딩, 코오롱빌딩 등의 대형 부동산을 매입했으며, 2005년에는 서울 역삼동의 45층짜리 스타타워빌딩을 매입하였다. 이러한 한국의 부동산 투자 과정에서 탈루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현재 한국인 선수들이 싱가포르 축구 리그에 진출해 있다.

싱가포르의 경제정책은 국가에서 통제하는 권위주의자본주의이다. 2009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은 1770억$로 43위의 해당하는 경제규모이며, 1인당 GDP는 37000$가 넘는 부유한 국가이다. 싱가포르는 고도로 발달된 시장 기반 경제를 가지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수출입 무역에 의존하여 발달하여 왔다. 제조업도 발전한 편인데, 2005년 기준으로 국민총생산의 28%가 제조업으로부터 나왔다. 주요 생산품은 전자, 석유화학, 기계공학과 의약품 제조이다.

싱가포르는 런던, 뉴욕, 도쿄에 이은 세계에서 4번째로 큰 외환시장을 가지고 있으며, 사업가들에게 가장 친화적인 정책과 환경으로 평가 받고 있다. 홍콩, 대한민국, 중화민국과 함께 싱가포르는 아시아의 네 마리 용(NIEs)으로 불리곤 한다. 물론 이젠 네마리의 용이 아니다. 한국은 일본과 경쟁할 정도의 체급이고, 한중일이 아시아를 이끄는 3대 영향력있는 국가라면 홍콩 대만 싱가포르는 작은 아시아의 용이라 할 수 있다.[17]

싱가포르는 관광산업으로도 유명한데, 2013년에는 1 500만 명의 관광객이 싱가포르를 방문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2005년에는 관광산업을 진흥하기 위해 도박을 합법화시켰으며, 마리나 사우스와 센토사 섬에 새로운 테마파크를 세우는 계획을 하고 있다. 또한 싱가포르 음식 축제, 칭게이 축제 등의 관광 이벤트를 추진하고 있다.

2001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GDP가 2.2% 떨어지는 어려움을 겪게 되자 2001년 12월에 경제검토위원회(ERC, The Economic Review Committee)를 세우고 경제에 다시 활력을 심어주기 위한 정책 수정을 제시하였으며, 이로부터 침체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2004년에는 8.3%, 2005년에는 6.4%의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현재까지 발견된 조사자료 등에 따르면 싱가포르 정부는 상당히 효율적이고 청렴도가 높은 편이며 투명한 시장 경제를 지지하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1960년대부터 시작한 주택개발위원회에 의한 “플랫”(Flat)이라고 불리던 대규모 정부 공급 아파트 정책이나 경쟁력이 우수한 교육 시스템이 유명하다. 미디어, 사회간접시설, 교통 등 대부분의 지역 경제는 정부 소유의 회사가 주도하고 있다.

한국의 부가가치세와 비슷한 싱가포르의 상품 및 서비스 세금(GST, Goods and Services Tax)는 1994년 4월 1일부터 3%로 부과되었다. 이를 통해 16억 달러의 정부 재원을 조달할 수 있었다. GST는 2003년에는 4%, 2004년에는 5%로 인상되었으며, 2007년 7월 1일부터 7%로 인상되었다. 싱가포르의 고소득자 소득세율은 약 20%다.

싱가포르는 아시아의 국제 교통 허브로, 많은 항공 및 해운 노선이 이곳을 지난다. 차량은 말레이시아와 마찬가지로 좌측통행을 한다. 홍콩처럼 땅이 좁아서 자동차 소유자에게 매우 높은 세금을 매기고 있으며, 자동차 구입 비용 또한 세계에서 가장 높아 인구는 500만명 가까이 되지만 자동차는 65만대가 등록되어 있다.

싱가포르는 미국처럼 이주민이 건설한 이민국가이면서, 한편으로는 동아시아의 전통적 가족관이 유지되고 있다. 싱가포르에서는 시부모나 나이 드신 분을 모시고 살거나, 실직하여 생계를 잇기 힘든 남자 형제를 도와주고 고아가 된 조카를 입양하는 것이 전통적 가치관으로 여겨진다.[18]

민족별로는 중국계가 전체 인구의 74%를 차지하며, 말레이인이 13%로 두번째로 많다. 그 밖에 영연방 출신인 인도인(주로 타밀인 출신) 등의 여러 민족이 거주한다.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 국가에서 이민을 장려하고 있으며, 한 해에 태어나는 싱가포르의 아기보다 이민으로 유입되는 새로운 시민의 숫자가 더 많다. 특히 향후 싱가포르의 국가에 도움이 될 만한 인재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이민을 장려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체류비자나 취업비자, 영주권을 얻기가 다른 나라에 비해 쉬우며 투자 및 사업 이민의 경우 100% 외국인 투자가 가능하다.

공용어말레이어, 영어, 중국어, 타밀어가 있으나, 사실상 영어가 유일한 공용어 역할을 한다. 말레이시아와 긴 역사 때문에 말레이어국민어로 지정되어있다. 타밀어를 공용어로 한 이유는 단순히 타밀인을 배려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일상적인 경우에도 영어를 많이 쓰는 편이며, 특히 직장에서는 영어 혹은 중국어가 많이 쓰인다. 하지만 중국어의 경우는 광둥어(광동어)나 다른 지역 중국어 사투리를 구사하는 인구가 많기 때문에 중국계 싱가포르인 사이에서도 영어가 많이 쓰인다. 그래도 대부분 표준 중국어(보통어/북경어)를 쓰는 편이다.

영어가 많이 쓰이긴 하지만 싱글리시라는 일종의 싱가포르인이 구사하는 사투리가 있기도 하다. 이 싱가포르식 영어는 아시아 국가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유럽에서 쓰는 영어나 미국에서 쓰는 영어와 약간 차이가 있다. 싱글리쉬는 영국식 영어를 기반으로 중국이나 말레이식 억양에 짧고 간단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말끝에 "라~"(Lah~)를 붙이는 말버릇이 있다.[19]

홍콩과 비교해서도 영어가 더 폭넓게 쓰이고 있으며 일반 상점가나 택시기사의 영어 구사 능력도 보통 홍콩보다 더 뛰어나다. 이렇게 유창한 영어구사 가능 인구가 많은 덕분에 영국, 미국과 다른 서방국가에서는 홍콩과 함께 아시아에 진출하기 쉬운 거점도시로서 싱가포르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유럽계가 싱가포르에 많다고 할 수는 없다. 간판, 컴퓨터, 학교, 국가 등의 생활 속에서도 영어가 많이 쓰인다.

2000년부터, 초등 교육이 의무 교육이 되었으며, 문맹률아시아에서 가장 우수한 편인 5% 미만이다. 1997년 TIMSS자료에서는 싱가포르가 수학과 과학에서 일본(수학 및 과학 3위), 한국(수학 2위, 과학 4위), 미국(수학 28위, 과학 17위)을 제치고, 모두 1위(1995, 1999, 2003년)를 차지한 바가 있다.

사립학교공립학교가 섞여 있으나, 싱가포르 교육부에서 표준 과정을 설정하고 있으며, 사립학교의 구분도 분명치 않은 것이 어떤 학교는 정부가 운영하고, 어떤 학교는 정부 보조를 받고, 자율 운영, 독립 혹은 개인 재정에 의한 학교 재정 등 다양하다. 또한 수준 높은 다양한 국제 학교가 외국인 파견 근무자의 가족을 위해 운영되며, 여타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주입식 교육을 선호한다. 또한 학교 생활에서의 스트레스는 한국, 일본, 중화민국 등 동북아시아 국가들보다 훨씬 심한 편이다. 이런 면에서 심한 수준으로 경쟁 교육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초등학교를 마친 후에는 초등 졸업시험(PSLE, Primary School Leaving Examination)이라는 시험을 치르고 중등과정 이후에는 진학진로에 따라 시험과정이 각각 다르게 설정된다. 대학과정으로는 싱가포르 국립대학, 난양 이공대학싱가포르 경영대학이 유명하다. 이 외에 기술 대학으로 테마섹, 싱가포르, 니안, 난양, 리퍼블릭 폴리테크닉 등이 있으며, 전통적으로 조건부 졸업제를 적용하고 있어 미관상의 이유로 체중을 감량한 학생에 한해 졸업장을 수여한다. 사립고등교육기관으로는 SIM Global, PSB Academy, Kaplan, MDIS 등이 있다. 사립대학교라고 인지되는 이 사립 교육기관들의 경우 인천송도글로벌캠퍼스와 유사한 시스템으로 운영이되며, 자체 Diploma 프로그램 수료 후 각각의 해외 파트너 대학의 학위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든 교육 기관들이다.

싱가포르는 원래 살던 말레이 민족 인구와 3대에 걸친 중국인, 이민온 인도인과 아랍인 그리고 현대에 이민오거나 현지파견된 한국인을 포함한 여러 민족과 문화가 다양하게 섞여 만들어 내는 복합적 문화를 발전시키고 있다. 특히 영국 식민지 문화와 페라나칸(Peranakan, 해협 중국인 사회)의 문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근래에 들어 미국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으나 싱가포르 사람들이 주로 쓰는 영어는 식민지 문화의 영향을 받은 영국식 영어이다. 여기에 다양한 중국어 방언, 말레이어, 인도어가 뒤섞여서 싱글리쉬라는 일종의 영어 방언을 만들고 쓰게 되었다. 교육제도에서 영어가 주된 언어로 쓰이기 때문에 싱가포르의 문학은 주로 영어로 쓰인다.

식민지시대에 이민자를 분리수용하는 정책 때문에 리틀인디아 및 차이나타운과 같은 민족성이 나타나는 지역이 아직도 존재하며, 결과적으로 이주민들이 자국에서 가져온 건축적 영향력이 잘 보존되어 건축물을 통해 각 민족의 성격을 느낄 수 있다. 중국인 구역에서는 여러 층으로 된 탑들, 용 형상 구조물과 조각품들, 건물 외벽에 붉은색과 황금색을 많이 사용하는 등 중국의 다양한 건축 양식을 만날 수 있다. 중국인 이주자들은 싱가포르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불교 사원을 건설하기도 했는데, 쌍림(Siong Lim, 雙林)사원이 그것이다.[20] 이주민들이 가져온 다양한 종교의 사원이 시내에 건축되었을 뿐만 아니라 종교적으로 관용을 지닌 국가의 본보기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인기 있는 스포츠는 축구이나, 수구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1990년 이래로 싱가포르 정부는 싱가포르를 동과 서를 아우를 수 있는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로 진정한 코스모폴리턴의 관문으로 만들려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노력 중 하나는 2002년 10월 12일 문을 연 에스플라네이드 극장이다. 연극, 무용, 음악 그리고 비주얼 아트등으로 구성된 예술축제는 국립예술위원회가 매년 개최한다.

2006년에 처음 개최된 싱가포르 비엔날레는 전 세계의 현대예술을 주제로 하였고, 2008년에는 동남아시아 작품을 소재로 하였다. 내부적으로는 기존 싱가포르인과 이민자 사이에 잘 보이지 않는 긴장과 반목이 존재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 또한 정부의 강력한 정책으로 억제되고 있다. 실제로 미래에 17~19세기의 미국 사회와 같은 새로운 이민문화가 생길 수 있을지는 두고봐야 할 과제이다.

국교는 없으며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유대교 등 다양한 종교를 믿는 인종들이 같이 살고 있다. 종교의 자유가 있지만 제한도 있는데, 예를 들어 여호와의 증인 활동을 1972년부터 금지하는 등이 있다. 강력한 정부 권력에 의해 다른 국가에서 볼 수 있는 정치적 종교 관여나 종교 분쟁은 찾아볼 수 없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불교 33%, 기독교18%, 이슬람교 14%, 힌두교 5%, 전통종교 1%, 그 외 종교가 11%이고 무종교가 17%를 보이고 있다. 국가 공휴일을 보면 하리라야하지, 석탄일, 디파발리(힌두교 음력설), 하리라야푸아사(라마단), 크리스마스 등 다양한 종교의 휴일이 국가 공휴일(Bank Holiday)로 지정되어 있다.

이렇게 다양한 싱가포르의 종교는 일상생활에서도 잘 나타나는데, 무슬림을 위해 하람(Haram, 금기)인 돼지비계기름(Lard)의 사용 유무를 표시한 레스토랑을 쉽게 볼 수 있으며, 또한 할랄카슈루트를 준수하는 음식점과 채식주의자를 위한 음식점 그리고 일반 음식점들이 나란히 모여 함께 영업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중요한 절기는 다음과 같다.

싱가포르에서 식사는 삶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싱가폴 음식은 싱가포르의 다양한 문화 중 한 예이다. 문화 간 혼합을 통해 독특한 싱가포르 요리를 만들어 낸 사례이기도 하다.

뉴질랜드의 기 뉴질랜드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러시아의 기 러시아
말레이시아의 기 말레이시아

멕시코의 기 멕시코
미국의 기 미국
페루의 기 페루
베트남의 기 베트남

브루나이의 기 브루나이
싱가포르의 기 싱가포르
오스트레일리아의 기 오스트레일리아
인도네시아의 기 인도네시아

일본의 기 일본
중화민국의 기 중화 타이베이
중화인민공화국의 기 중화인민공화국
칠레의 기 칠레

캐나다의 기 캐나다
파푸아뉴기니의 기 파푸아뉴기니
필리핀의 기 필리핀
홍콩의 기 홍콩 차이나

싱가포르 식물원
싱가포르 의회
싱가포르 대통령 집무실, 더 이스타나
싱가포르 도심 파노라마
이스트 코스트 파크에서 본 싱가포르.
싱가포르의 중학교
에스플레네이드
싱가포르 음식을 즐기는 사람들, 호커센터와 코피티암
싱가포르 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