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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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막(安漠, 1910년 4월 18일 ~ ?)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문학평론가를 지낸 정치인이다.

소설가 안국선의 5촌 조카이며 소설가 안회남의 6촌 아우이기도 한 그는 무용가 최승희(崔承喜)의 부군으로도 유명하다. 본관은 죽산(竹山). 개명하기 이전의 이름안필승(安弼承)이고 필명안추백(安萩白).

일본 무용가 이시이 바쿠(石井漠)의 이름을 따서 스스로 이름을 (漠)으로 개명했다.

경기도 안성 출생으로 경성제2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29년 일본와세다 대학교 노어노문학과에서 유학하며 사회주의 운동에 뛰어들었다. 역시 사회주의 계열의 문예운동가이던 최승일, 박영희의 소개로 최승희와 만나[1] 1931년 결혼했다. 최승일은 최승희의 오빠이다.

1930년대 초반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의 손꼽히는 이론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했으며, 카프 시절의 평론으로는 〈프로 예술의 형식문제 - 프롤레타리아 리얼리즘의 길로〉(1930), 〈조선 프로예술가가 당면한 긴급한 임무〉(1930), 〈창작방법문제의 재토의를 위하여〉(1933)가 있다. 같은 일본 유학파이며 소장파인 임화, 김남천과 더불어 김기진을 비판하는 내용의 평론을 썼다. 1930년대 중반 카프가 해체되고 투옥된 이후에는 두드러지는 활동이 거의 없었으며 아내 최승희의 매니저 역할에 전념하였다.

광복 후 곧바로 월북했고, 1950년대 중반에 문화선전성 부상을 지내는 등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의 고위직에서 일했으나 1958년 소설가 한설야 제거에 대한 사전 작업으로 카프 계열 문학 인사에 대한 정리가 이루어질 때 서만일, 윤두헌과 함께 부르주아 평론가로 몰려 숙청당해 곧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자세한 사망 경위나 사망 년도는 알려진 바가 없다.

무용평론가, 연출가인 안재승이 남동생이며, 최승희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인 안성희(초명 '안승자')는 발레 무용수였다. 동요 〈엄마야 누나야〉의 작곡가 안성현은 안막의 조카로 알려져 있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