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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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의 철수

침공 당시
미국의 기 미국
영국의 기 영국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오스트레일리아의 기 오스트레일리아
폴란드의 기 폴란드
쿠르드 자치구의 기 쿠르드 자치구
지원국
이탈리아 이탈리아[1]
캐나다 캐나다[2]

침공 당시

침공 이후
미국 미국
영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오스트레일리아
이라크 신이라크 정부

지원국
이란 이란[4][5]

침공 이후
이라크 지역 정당

지원국
시리아 시리아

수니파 집단

Flag of Jihad.svg 안사르 알 이슬람

시아파 집단

지원국:
이란 이란

이라크 이야드 알라위
이라크 이브라힘 알자파리
이라크 누리 알말리키
미국 조지 W. 부시
미국 토미 프랭크스
미국 버락 오바마
미국 도널드 럼즈펠드
미국 로버트 게이츠
리카르도 산체즈
레이먼드 오디에르노
데이비드 페트류스
조지 W. 케이시
로이드 오스틴
영국 토니 블레어
영국 고든 브라운
영국 데이비드 캐머런
오스트레일리아 존 하워드
오스트레일리아 케빈 러드
이탈리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스페인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

이라크 사담 후세인
이라크 쿠사이 후세인
이라크 우다이 후세인
이라크 알리 핫산 알 마지드
이라크 바르잔 이브라힘
이라크 이자트 이브라힘 알두리

수니파 무장단체 지도자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
아부 아이유브 알마스리†
아부 오마르 알바그다디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
이스마일 주부리
아부 압둘라 알샤피

시아파 무장단체 지도자
이란 가셈 솔레이마니
무크타다 알사드르
아부 데라

침공 당시: 309,000명
미국 192,000명[6]
영국 45,000명
오스트레일리아 2,000명
덴마크 370명[7]
폴란드 194명
쿠르드 자치구 70,000명

MNF-I: 176,000명
USF-I: 112,000명
보안담당관: 6,000-7,000명[8]
이라크 보안군: 805,629명[9]

침공 당시
이라크 375,000명
이라크 특수보위대 12,000명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 70,000명 -75,000명
페다인 사담 30,000명

수니파 반군: 70,000명[11]
알카에다: 1,300명 (2006)[12]

이라크 이라크 보안군

MNF-I
사망: 4,815명[15][16]

실종/포로: 17명 (미국)[19]
부상: 32,776명 이상

부상 및 기타 질병: 51,139

민간 무장단체

이라크의 아들들

전체 사망: 25,285명

이라크군: 7,600–10,800명[42][43]
반군

이라크 전쟁 또는 제2차 걸프 전쟁, 이라크 자유 작전(영어: Operation lraq Freedom https://en.wikipedia.org/wiki/Iraq_War[*])은 2003년 3월 20일 미국이라크 침공으로 시작되어, 2011년 12월 15일 종전[46]되었다. 그리고 미군이 이라크에서 철수하자마자 이라크는 내란에 휩싸였다.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 제1441호에 의해 이라크를 사찰했으나 전면적인 협력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미국이, 군사 제재를 위해서는 새로운 결의가 필요하다는 프랑스와 독일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전쟁을 감행했다.

2006년 결국 후세인의 두 아들인 우다이 후세인쿠사이 후세인이 열화 우라늄 탄에 맞아 숨을 거두고[47] 이후 후세인은 미군의 체포로 인하여 종전되었다. 미군은 후세인 독재 세력의 지지 기반을 와해시킴으로써 그동안 유지되던 이라크 내 치안이 와해되었으며 이로 인해 보복 살해 등 종파 분쟁이 발생하고 치안 부재로 인한 무장 세력의 형성과 이들의 저항으로 미군 수천 명이 전사하는 결과를 낳았다. 뒤늦게 부족한 지상군을 증원하고 이라크 경찰과 군을 재건하여 미군 전사자 수가 크게 줄고 안정을 되찾아 갔으나 미군이 철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7년이 지난 2010년 8월 20일. 모든 전투 병력을 철수시키기 시작, 2011년 12월 15일 미국에서 공식으로 종전을 선언하였으며 같은 해 12월 18일 미군은 이라크에서 완전히 철수하였다.

미군에 의해 교육, 훈련, 창설된 이라크 제6군(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