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유럽어족

로그아웃한 편집자를 위한 문서 더 알아보기

둘러보기

사용자 모임

편집 안내

도구

인쇄/내보내기

다른 프로젝트

인도유럽어족(영어: Indo-European languages)은 유럽서아시아, 남아시아를 중심으로 분포한 인도유럽인 민족들의 언어로 이루어진 어족이다. 인구어족(印歐語族)이라고도 한다.

에스놀로그에 따르면 오늘날 445개의 인도유럽어족 언어가 쓰이며 그 가운데 2/3이 넘는 313개가 인도이란어파라는 갈래에 속한다.[2] 모어 화자 수가 가장 많은 인도유럽 언어는 스페인어, 영어, 힌두스탄어(힌디어·우르두어), 포르투갈어, 벵골어, 펀자브어, 러시아어로, 각각 1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용한다. 독일어, 프랑스어, 마라티어, 이탈리아어, 페르시아어도 각각 5천만 명 이상이 사용하는 거대 언어이다. 오늘날 세계 인구의 46%에 달하는 32억 명이 인도유럽어족 언어를 모어로 사용하며 이는 모든 어족 중 가장 큰 숫자이다.

인도유럽어족에는 오늘날 유럽에서 쓰이는 대부분의 언어가 속하며, 동아시아동남아시아를 제외한 아시아에도 인도유럽 언어들이 분포한다. 중세에 튀르크인몽골인의 확장에 밀려나기 전까지는 고대의 아나톨리아(오늘날의 터키)와 타림 분지에서도 인도유럽어가 쓰였다. 유라시아 바깥을 보면, 대항해시대부터 시작된 식민화의 결과로 인도유럽어는 아메리카의 대부분 지역과 오세아니아아프리카의 많은 지역에서 우세하게 쓰인다. 다른 어족이 우세한 지역에서도 인도유럽어족은 소수언어제2언어로 가장 흔하게 쓰이는 어족이다.

인도유럽어족은 역사언어학 분야에서 특별한 위치에 있는데, 청동기 시대부터 미케네 그리스어아나톨리아어파히타이트어루위어로 된 문자 기록이 나타나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기록의 역사를 지닌 어족이기 때문이다. (가장 긴 역사를 지닌 어족은 이집트어근동셈어파 언어들이 속한 아프리카아시아어족이다.) 인도유럽어족 언어의 가장 오래된 흔적은 아나톨리아 동부의 아시리아 유적지인 퀼테페에서 발견된 기록에 남은 히타이트어 단어와 고유명사들이다. 비록 메소포타미아 쐐기 문자를 통해 셈어파 언어인 고대 아시리아어로 기록되기는 했지만 말이다.[3]

모든 인도유럽어족 언어는 인도유럽조어라 불리는 단일한 신석기 시대 언어의 후손이다. 비록 인도유럽조어 자체나 그 화자인 원시 인도유럽인의 문화와 종교에 관해 남아 있는 기록은 전혀 없지만, 인도유럽어족의 원향으로부터 각지로 퍼져나간 후손들인 고대와 현대의 여러 인도유럽 민족의 언어와 문화로부터 그 모습이 어떠했을지 재구성해 볼 수 있다.[4]

16세기에 인도 아대륙을 찾아간 유럽인들은 인도아리아어군이란어군 언어와 유럽 언어들 사이의 유사성을 알아차렸다. 1583년, 영국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이자 콘칸어 학자였던 토머스 스티븐스는 고아에서 활동하던 중 형에게 보낸 편지에서[5] 인도의 언어들과 그리스어라틴어의 유사성에 관해 말했다.

1540년 피렌체에서 태어나 인도를 방문한 상인인 필리포 사세티도 비슷한 관찰을 했다. 1585년에 그는 산스크리트어이탈리아어에 유사한 단어들이 있다고 기록했다. 그런 단어들의 예로는 devaḥ/dio “신”, sarpaḥ/serpe “뱀”, sapta/sette “일곱”, aṣṭa/otto “여덟”, nava/nove “아홉” 따위가 있었다.[5] 그러나 스티븐스나 사세티의 관찰은 보다 깊은 학문적 탐구로 이어지지 못했다.[5]

1647년 네덜란드의 학자 마르쿠스 주에리우스 판 복스호른은 아시아와 유럽의 몇몇 언어들이 서로 유사함을 지적했으며 이 언어들이 ‘스키타이어’라는 공통 조상으로부터 나왔다는 이론을 세웠다.[6] 그의 가설에는 네덜란드어, 알바니아어, 그리스어, 라틴어, 페르시아어, 독일어가 포함돼 있었으며 나중에는 여기에 슬라브어파, 켈트어파, 발트어파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판 복스호른의 가설은 널리 알려지지 못했으며 추가적인 연구로 이어지지 않았다.

오스만 튀르크의 여행가 에블리야 첼레비는 1665 ~ 1666년에 외교 임무를 띠고 에 파견되었을 때 독일어와 페르시아어 단어 사이의 유사성을 기록했다. 프랑스의 예수회 선교사이자 인도학자인 가스통 쾨르두를 비슷한 여러 사람도 비슷한 관찰을 했다. 쾨르두는 1760년대 후반에 산스크리트어·라틴어·그리스어의 동사 굴절을 꼼꼼하게 비교하여 이 언어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고 제안했다. 한편 미하일 로모노소프는 슬라브어파, 발트어파(‘쿠를란트어’), 이란어군(‘메디아어’), 핀란드어, 중국어, ‘호텐토트어’(코에코에어) 등 서로 다른 언어군을 비교하였으며, 서로 연관된 언어들은(라틴어, 그리스어, 독일어, 러시아어 등) 고대에 공통의 조상들로부터 서로 갈라졌음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7]

이 가설은 1786년 영국의 언어학자 윌리엄 존스가 그의 시대에 알려져 있던 가장 오래된 언어인 라틴어, 그리스어, 산스크리트어 사이의 놀랄 만한 유사성에 관해 강의하면서 다시 등장했다. 그는 여기에 잠정적으로 고트어, 켈트어, 페르시아어를 덧붙였다.[8] 그의 분류에는 잘못 포함된 언어와 잘못 빠트린 언어도 몇몇 있기는 했다.[9] 존스는 1786년 벵골 아시아 협회의 강의에서 오래된 조상 언어의 존재를 추측하며 후대의 연구를 예지하듯 다음과 같이 선언하는데, 이는 언어학에서 가장 유명한 인용구 중 하나이다. 그는 이 조상 언어를 “공통의 근원”이라 불렀지만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다.

산스크리트어는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모르나 놀라운 구조를 갖추었다. 그리스어보다 완벽하고, 라틴어보다 풍부하며, 둘 모두보다 세련되게 다듬어졌으나, 동사의 어근과 문법의 형식 양면에서 우연의 결과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두 언어와 닮아 있다. 이 유사성은 너무나 강렬해서, 그 어떤 문헌학자도 이 세 언어를 모두 살펴본 뒤에 어쩌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어느 공통의 근원으로부터 이 언어들이 유래하였다고 믿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영국의 물리학자이자 언어학자인 토머스 영은 1813년에 ‘인도유럽어족’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고, 하나의 발상지에서 나온 단일 민족이 이웃 민족들을 잇달아 침략하여 자기네 언어를 전파했으리라는 가정을 내놓는다. 인도유럽어족이라는 이름은 어족이 분포하는 지역의 동쪽과 서쪽 끝인 북인도서유럽에서 따온 것이다.[11][12] 같은 뜻으로 ‘인도·게르만어족’(영어: Indo-Germanic, Idg. 또는 IdG.)이라는 용어도 쓰이는데, 사용 지역의 최남단과 최북단에 분포하는 갈래들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이 용어는 1810년 콩라드 말트브룅의 저작에서 프랑스어(indo-germanique)로 처음 등장한다. 대부분의 언어에서 ‘인도게르만어족’은 ‘인도유럽어족’에 비해 구식이거나 덜 흔하게 쓰이는 용어가 되었지만 독일어에서는 여전히 ‘indogermanisch’가 표준 용어이다.

프란츠 보프는 1816년에 《그리스어, 라틴어, 페르시아어, 게르만어와 비교한 산스크리트어의 동사 굴절 체계에 관하여》[13]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고 1833년부터 1852년까지 《비교 문법》을 집필했다. 이는 학문 분야로서 인도유럽어학의 출발을 알렸다. 인도유럽어족 비교언어학의 고전기는 여기서부터 1861년 아우구스트 슐라이허의 《개론(Compendium)》을 거쳐 1880년대에 출판된 카를 브루크만의 《개요(Grundriß)》로 이어진다. “근대적” 인도유럽어학의 시작은 브루크만의 젊은이 문법학파적 관점에 따른 인도유럽어학 분야의 재평가와 페르디낭 드 소쉬르후두음 이론이라고 볼 수 있다. 1927년에 히타이트어 자음 ḫ의 존재를 밝혀낸 예지 쿠리워비치의 1956년 저작 《인도유럽어의 모음교체》 이후, 캘버트 왓킨스, 요헴 쉰들러, 헬무트 릭스 등 20세기 후반에 활동한 학자들은 인도유럽어족의 형태론과 모음교체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14] 쿠리워비치의 발견은 페르디낭 드 소쉬르가 1879년에 인도유럽어에서 나타나는 모음 길이 변이를 설명하기 위해 제안한 ‘공명계수’(coefficients sonantiques)의 존재를 입증하였다.

인도유럽어족은 크게 열 갈래로 나뉜다. 아래에 가나다순으로 나열하였다.

그 밖에도 오늘날 사라졌으며 거의 잘 알려지지 않은 언어 가운데 인도유럽어족에 속하거나 속한다고 주장된 것들이 여럿 있다.

어떤 언어가 인도유럽어족에 속한다는 것은 계통적인 의미이다. 즉,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모든 언어는 인도유럽조어라는 공통 조상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어떤 언어가 인도유럽어족의 한 갈래나 하위 계통군에 속한다는 것도 역시 계통적인 의미인데, 각각의 갈래나 계통군을 정의하는 것은 그에 속한 언어들 사이의 ‘공통적 혁신’이다. 이러한 공통적 혁신은 다른 인도유럽어 집단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공통 조상의 존재를 시사한다. 예를 들어 게르만어파가 인도유럽어족의 한 갈래인 까닭은 게르만어파 전체에 적용되는 규칙들을 통해 게르만어파 언어 하나하나의 구조와 발음을 상당 부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게르만어파 언어들이 공유하는 특성은 모든 게르만어의 조상인 게르만조어에서 일어난 혁신으로 여겨진다.

“나무 모형”은 한 어족의 계통적 역사를 나타내는 한 가지 방식이다. 나무 모형은 후손 언어들이 서로 갈라진 이후 그 언어를 사용하는 공동체들끼리 더 이상 접촉하지 않는 경우에 사용하기 알맞다. 이런 경우 공통 혁신으로 정의된 하위 집단 안에서 다시 추가적인 공통 혁신으로 정의된 하위 집단을 찾을 수 있고, 이러한 과정을 반복할 수 있다. 후손 언어들이 서로 갈라진 이후에도 접촉을 유지하는 경우에는 나무 모형을 사용하기 알맞지 못하다. 이런 경우에는 하위 집단들끼리 서로 겹치는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물결 모형”을 사용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29] 인도유럽어족의 하위 집단을 설정함에 있어 지금까지 대부분의 접근법은 나무 모형이 대체로 인도유럽어족에 적합하다고 가정해 왔다.[30] 그러나 물결 모형을 사용한 접근도 오랜 전통이 있다.[31][32][33]

계통적 변화에 더해, 인도유럽어족 언어에서 오래 전에 일어난 많은 변화는 언어 접촉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라틴어, 오스크어, 움브리아어 등 이탈리아어파 언어들이 공유하는 두드러진 특징 중 여럿은 지역적 특징일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되어 왔다. 보다 확실한 예로는 서게르만어군 언어들의 장모음 체계에서 보이는 매우 유사한 교체 현상이 있는데, 이는 조어 단계의 혁신이라고 보기에는 발생 시기가 너무나도 늦다. (그러나 지역적 특징으로 취급하기도 쉽지 않은데, 영어와 대륙부 서게르만어군은 하나의 언어 지역을 이루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하게, 게르만어와 발트슬라브어파가 공유하는 여러 특징들은 공통 조어에서 물려받은 특징이라기보다는 지역적 특징이라고 보는 쪽이 훨씬 개연성이 크다. 예컨대 인도유럽조어 성절 자음 *ṛ, *ḷ, *ṃ, *ṇ 앞에 고모음이 생겨난 일이 있는데(게르만어파는 *u, 발트슬라브어파는 *i/u), 이는 인도유럽어족 가운데 오직 이 두 어파에만 나타나며 물결 모형으로 설명하기 알맞다. 발칸 언어 지역에 속한 언어들은 매우 다른 어파에서 왔음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지역적 수렴을 겪었다.

도널드 린지와 탠디 워노의 언어 진화 모형에 따르면 초기 인도유럽어족은 서로 다른 갈래끼리 접촉이 제한적이었고, 게르만어파만이 초기에 이웃들로부터 몇몇 특징을 받아들임으로써 나무 모형과 덜 닮은 행태를 보인다고 한다. 특히 서게르만어군의 내적 다양화 과정은 나무 모형과는 몹시 다른 꼴이었다고 한다.[34]

인도유럽어학 전문가들은 이탈리아켈트어파, 그리스아르메니아어파, 그리스아리아어파, 그리스·아르메니아·아리아어파, 발트·슬라브·게르만어파 따위의 최상위 갈래가 존재한다는 가설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전통적인 열 갈래와 달리 이러한 가설은 모두 크든 작든 논란의 대상이다.[35]

이탈리아켈트어파는 한때 논란의 여지가 없는 정설이었고, 앙투안 메예는 발트슬라브어파보다도 탄탄히 확립된 것으로 여겼다.[36] 주된 근거는 속격 접미사 , 최상급 접미사 -m̥mo, 같은 단어 내의 /kʷ/ 앞에서 /p//kʷ/로 변한 것(예: penkʷe > *kʷenkʷe > 라틴어 quīnque, 고대 아일랜드어 cóic), 가정법 형태소 -ā- 등이었다.[37] 캘버트 왓킨스는 이러한 증거에 대한 반박을 내놓았고[38] 마이클 와이스는 이탈리아켈트어파 가설을 옹호한다.[39]

그리스어파와 아르메니아어의 관계에 대한 증거로는 둘째 후두음을 어두에서 규칙적으로 a로 바꾼 것이나, ‘여자’와 ‘양’을 뜻하는 어휘 등이 있다.[40] 그리스어파와 인도이란어파는 주로 동사 형태론과 명사 파생 패턴에서 혁신을 공유한다.[41] 프리기아어와 그리스어,[42] 트라키아어와 아르메니아어 사이에도 관계가 있다고 제안된 바 있다.[43][44]

인도히타이트 가설에 따르면 인도유럽어족은 두 개의 큰 갈래로 나뉘는데, 한쪽 갈래는 아나톨리아어파이고 다른 한쪽 갈래에는 나머지 모든 인도유럽어족 언어가 속한다는 것이다. 다른 모든 갈래와 구별되는 아나톨리아어파의 특징은 (예컨대 성이나 동사 체계) 오래된 어형의 반영이라 해석되기도 하고, 오랜 고립으로 나타난 혁신이라 해석되기도 한다. 인도히타이트 가설을 뒷받침하는 논점으로는 아나톨리아의 인도유럽어 농경 어휘와[45] 후두음의 보전 따위가 있다.[46]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 가설은 아나톨리아어파에서 나온 증거에 지나치게 큰 비중을 부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다른 견해에 따르면 아나톨리아어파는 비교적 늦은 시기에 인도유럽조어로부터 떨어져 나왔는데, 이는 인도이란어파와 대략 비슷하고 그리스어파나 아르메니아어보다는 늦은 시점이다. 이른바 인도유럽어학의 프랑스 학파에서 통용되는 세 번째 견해에 따르면, 아나톨리아어파를 포함한 비(非)-사템어가 공유하는 특징은 인도유럽어 사용 지역의 변두리라는 위치와 이른 분기의 결과이지, 특별한 계통 관계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47] 한스 J. 홀름은 어휘통계적 계산을 바탕으로 학계의 일반적인 의견에 부합하며 인도히타이트 가설을 반박하는 모형을 내놓았다.[48]

1890년 페터 폰 브라트케는 인도유럽어족의 어파들을 크게 켄툼어(centum語)와 사템어(satem語)로 나눌 것을 제안했다. (1886년에 카를 브루크만도 비슷한 주장을 하기는 했다.) 사템어에는 발트슬라브어파와 인도이란어파, 그리고 (대부분의 측면에서) 알바니아어와 아르메니아어가 속하는데, 사템어에서는 인도유럽조어의 경구개음 계열이 마찰음으로 변했으며 양순연구개음 계열은 연구개음 계열과 합쳐졌다. 반면 켄툼어에서는 경구개음 계열과 연구개음 계열이 합쳐지고 양순연구개음 계열은 별개로 남았다. 이러한 음운 변화는 숫자 ‘100’을 뜻하는 아베스타어 단어 ‘satem’과 라틴어 단어 ‘centum’에 잘 드러나는데, 인도유럽조어에서 경구개 파열음이었던 어두 자음이 전자에서는 마찰음 [s]로 변하고 후자에서는 연구개음 [k]로 변한 것이다.

보통 켄툼어와 사템어의 구분은 계통적 구분이 아니라, 일정한 지역의 인도유럽조어 방언들 사이로 퍼져나간 혁신적 발달의 결과로 생각된다. 켄툼어와 사템어를 가르는 등어선은 초기 인도유럽 어파들을 구분짓는 다른 등어선들과 교차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켄툼어에 속하는 어파들이 인도유럽조어의 원래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고 사템어에 속하는 어파들만이 공통적으로 혁신을 겪었을 가능성도 있다.[49] 코르틀란트의 제안에 따르면 발트인과 슬라브인의 조상은 훗날 인도유럽어족의 서쪽 권역에 이끌려 들어가기 이전에 사템어로의 변화를 겪었을 것이라고 한다.[50]

인도유럽조어(PIE)는 비교 재구를 통해 추측해낸 인도유럽어족의 조상 언어이다. 인도유럽조어를 말했던 가상의 집단을 원시 인도유럽인이라고 부른다. 인도유럽조어는 굴절어로서, 단어들 사이의 문법적 관계를 나타내기 위해 굴절형태소(주로 접미사)를 사용하는 언어였다. 인도유럽조어에서는 어휘적 의미를 지닌 기본적인 형태소인 어근 뒤에 파생접미사가 붙어 어간을 이루었고, 어간 뒤에 굴절접미사가 붙어 굴절된 단어(명사동사)를 만들었다. 재구된 인도유럽조어 동사 굴절 체계는 복잡하며 명사 굴절 체계와 마찬가지로 모음교체 현상을 보인다.

인도유럽조어의 분화와 사용 지역의 확산이 시작된 것은 6,000년 전 또는 8,000년 전이라고도 한다. 그 기원지에 대한 가설로는 5,000-6,000년 전의 흑해·카스피해 북쪽(현재의 우크라이나)이라고 하는 쿠르간 가설과 8000-9500년 전의 아나톨리아(현재의 터키)로 하는 아나톨리아 가설이 있다.

인도유럽조어가 여러 어파로 갈라진 과정에 대한 역사적 증거는 없다. 하지만 후손 언어들이 분화된 시점에 대해서는 대체로 이견이 없으며, 이 문제는 인도유럽어족의 원향이 어딘지와도 크게 관련없다.

기원전 3500년경

기원전 2500년경

기원전 1500년경

기원후 500년경

도널드 린지와 탠디 워노는 진화생물학에서 빌려온 수학적 방법론을 통해 인도유럽어족 각 어파의 분기 시점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51]

데이비드 앤서니는 다음과 같은 연대를 제시한다.[53]

기원전 1500년부터는 다음과 같은 연대기를 제시할 수 있다.

인도유럽어족의 역사와 인도유럽조어의 모습을 재구성함에 있어 특별히 중요한 위치에 있는 언어들이 있다. 이들은 주로 기록이 풍부하고 이른 시기부터 문증된 고대 인도유럽어들이다. 그러나 늦은 시기부터 문증되었다고 해도 언어학적으로 상당히 보수적인 언어라면 재구에 중요할 수 있다(리투아니아어가 대표적). 오래된 운문 텍스트는 엄격한 운율을 따르기 때문에 특히 중요한데, 이를 통해 모음의 길이처럼 문자로 표기되지 않았거나 전승 과정에서 손상된 여러 특징을 재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언어는 다음과 같다.[55]

그 밖에 으뜸가는 출처로는 다음이 있다.

버금가는 출처로서 기록이 미약한 탓에 가치가 덜한 언어로는 다음이 있다.

버금가는 출처로서 광범위한 음운변화를 겪고 비교적 기록이 적어 가치가 덜한 언어로는 다음이 있다.[56]

인도유럽조어(PIE)가 서로 다른 자손 언어들로 갈라지면서, 그 소리 체계도 다양한 음운 규칙에 따라 변화하였다.

보통 인도유럽조어는 15개의 파열음 음소를 지닌 복잡한 소리 체계를 지녔던 것으로 재구된다. 이 체계는 무성음·유성음·유기유성음(또는 숨섞인소리)의 독특한 3중 발성 대립이 존재하며, 연구개음을 “경구개음”(ḱ ǵ ǵh)·“기본 연구개음”(k g gh)·“양순연구개음”(kʷ gʷ gʷh)의 3계열로 구분한다. (‘경구개음’과 ‘기본 연구개음’이라는 용어가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인도유럽조어 참조.) 자손 언어들은 모두 이러한 대립의 수를 줄이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예를 들어 게르만어파에 속하는 영어가 겪은 주요한 변화로는 다음이 있다.

원래의 자음들은 각각 오른쪽으로 한 칸씩 움직였다. 예를 들어 원래의 d로 변했고, 원래의 dt로, 원래의 tθ(영어에서 ‹th›로 표기하는 소리)로 변했다. 이 변화를 통해 오늘날 영어의 ‹f›, ‹th›, ‹h›, ‹wh›로 표기되는 소리들이 처음 생겨났다. 이 소리들이 대체로 변함없이 남아 있는 라틴어와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어쩌면 아나톨리아어파, 특히 루위어를 제외하고) 인도유럽조어의 후손 언어 중에 기본 연구개음 계열을 다른 두 계열과 별개로 유지한 언어는 없으며, 인도유럽조어에 기본 연구개음 계열이 있었는지조차 어느 정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후손 언어들은 인도유럽조어의 기본 연구개음 계열을 어떻게 반영하느냐에 따라 켄툼어와 사템어로 구분된다.

인도유럽조어의 무성·유성·유성유기 파열음 간 3중 대립은 언어유형론적으로 매우 특이하다고 여겨진다. 특히 무성 유기 파열음 계열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유성 유기 파열음이 존재한다는 점이 그렇다. 이처럼 PIE의 불안정한 3중 대립을 그대로 유지한 어파는 없으며 저마다 다양한 “해결책”을 내놓았다.

그 밖에 자음과 관련된 중요한 변화들은 다음과 같다.

아래는 재구에 중요하게 쓰이는 후손 언어들에 인도유럽조어 자음이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지 대강 나타낸 표이다.

다음 표는 영어 동사 ‘bear’의 어원인 인도유럽조어 동사 어근 *bʰer- ‘나르다, 지니다’의 모음어간 직설법 현재시제 굴절형이 고대와 현대의 인도유럽어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보여준다.

옛 언어들과 현대의 후손 및 친척 언어들 사이에 여전히 공통점이 보이긴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차이가 점점 벌어져 왔다. 어떤 인도유럽 언어들은 종합어적 동사 체계에서 우언성이 큰 체계로 변했다. 위 표에서는 우언적 구문에서 대명사가 필요한 경우 괄호 안에 나타냈다. 위의 동사 중 여럿은 의미 면에서도 변화를 겪었다.

오늘날 인도유럽어족 언어는 사람이 사는 모든 대륙에 걸쳐 32억 명이 모어로 사용한다.[57] 이는 모든 어족 가운데 가장 큰 숫자이다. 모어 화자 수가 가장 많은 20개 언어 중 10개가 인도유럽어족에 속한다. 수가 많은 순서대로 스페인어, 영어, 힌두스탄어, 포르투갈어, 벵골어, 러시아어, 펀자브어, 독일어, 프랑스어, 마라티어인데, 이들의 모어 화자 수만 합쳐도 17억 명에 이른다.[58] 또한 세계적으로 수억 명의 사람들이 제2언어나 제3언어로 인도유럽어를 배우며, 영어를 제2언어로 배우는 사람들의 수만 해도 대략 6억[59]에서 10억[60]에 달한다.

인도유럽어족이 이토록 화자 수가 많고 광대한 영역에서 쓰이게 된 까닭은 여러 가지가 있다. 선사 시대 인도유럽인의 이주와 인도아리아족, 이란족, 켈트족, 그리스인, 로마인, 게르만족, 슬라브족유라시아 전역에 걸친 인도유럽 문화의 확산 때문에, 이들 민족의 언어는 근동 일부, 북아시아, 동아시아를 제외한 유라시아 전 지역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였고 기존에 존재하던 인도유럽어족 이전 언어들을 대부분 몰아냈다. 다만 중동북아프리카의 대부분 지역에서는 셈어파 언어가, 캅카스에서는 캅카스 제어가 지배적으로 쓰인다. 마찬가지로 유럽과 우랄산맥 지역에서는 헝가리어, 핀란드어, 에스토니아어우랄어족 언어가 남아 있으며 인도유럽어족 이전의 고립어바스크어도 살아남았다.

자신들의 언어가 같은 뿌리에서 비롯했다는 사실을 알지는 못했지만 여러 인도유럽어족 화자 집단은 유라시아의 서쪽 2/3 지역을 문화적으로 지배하고 종종 토착어를 몰아냈다. 서기원년쯤에 인도유럽계 민족들은 이 지역의 거의 전부를 지배했다. 켈트족은 서유럽과 중부 유럽을, 로마인은 남유럽을, 게르만족은 북유럽을, 슬라브족은 동유럽을, 이란족은 서아시아·중앙아시아의 대부분과 동유럽의 일부를, 인도아리아족은 인도 아대륙을 지배했으며 중국 서부에도 토하라족이 살고 있었다. 중세에 이르면 유럽과 아시아의 서쪽 절반 지역에 남은 비(非)인도유럽어족 언어는 셈어파, 드라비다어족, 캅카스 제어, 우랄어족, 바스크어뿐이었다.

중세에 인도유럽어 사용 지역은 한때 원시 인도유럽인들이 속한 집단이었던 유라시아 유목민들의 침략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세에 인도유럽어족의 확장은 또다시 정점에 이르게 된다. 인도 아대륙의 인구가 급속히 증가했고, 유럽인이 대항해시대를 열어 전세계로 퍼져나갔으며, 중앙집권화와 민족주의의 성장으로 주변 비(非)인도유럽 언어와 민족에 대한 동화가 지속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근대에도 전세계적 인구 증가와 유럽인의 아메리카오세아니아 식민화에 힘입어 계속되었고, 인도유럽어 화자 수와 사용 영역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오늘날의 정치, 과학, 기술, 교육, 금융, 체육 분야에서 인도유럽 언어의 지배와 식민화로 말미암아, 인구의 대부분이 비인도유럽어를 사용하는 국가들 중에도 인도유럽어를 공용어로 삼은 국가가 많으며, 세계 인구의 과반은 인도유럽 언어를 하나 이상 구사할 줄 안다. 인터넷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인도유럽어가 절대다수를 차지하며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영어이다. 영어는 여러 면에서 국제 공통어로 자리매김했다.

비교언어학의 선구자 프란츠 보프
처음 기록된 시기에 따라 배치한 인도유럽어족 계통수
기원전 500년경 인도유럽어족의 주요 등어선
  파랑: 켄툼어
  빨강: 사템어
  주황: 접두모음이 있는 언어
  녹색: 인구조어 *-tt- > -ss-의 변화를 겪은 언어
  갈색: 인구조어 *-tt- > -st-의 변화를 겪은 언어
  분홍: 도구격·여격·탈격 복수 접미사에 *-bh-가 아닌 *-m-이 있는 언어
쿠르간 가설에 따른 인도유럽어족의 확산 모형
  공용어 또는 제1언어
  제2공용어
  공인 지위가 있는 언어
  주요 언어
  미사용
오늘날 아메리카의 인도유럽어족 분포 현황:
로망스어군: 게르만어파:
  영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