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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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왕정(오를레앙 왕조)(1830년 ~ 1848년)

프랑스 제2공화국(1848년 ~ 1852년)
프랑스 제2제국(1852년 ~ 1870년)
프랑스 제3공화국(1870년 ~ 1940년)

카페 왕조(프랑스어: Capétiens)는 987년 위그 카페가 프랑스 왕위에 올랐을 때부터 1792년까지 이어지다가 다시 1814년부터 백일천하를 제외하고 1848년까지 이어진, 프랑크계 귀족 가문인 로베르 왕조의 분가이자 프랑스의 왕조이다. (카페 본가1328년 단절되었으나 분가 발루아 왕조부르봉 왕조가 본가를 계승했다.) 카페 왕조의 혈통을 이어받은 마지막 프랑스 국왕은 루이 필리프 1세이다.

카페 왕조는 중세 유럽에 있어 가장 큰 영향을 준 왕조이다. 카페 왕조는 프랑스를 중심지로 하여 프랑스 왕국, 포르투갈 왕국, 프리슬란트 왕국, 아라곤 왕국, 나바레 왕국, 라틴 제국, 폴란드 왕국, 헝가리 왕국신성로마제국영국의 공국에서 군림하였다.

카페 왕조는 전통적으로 메로빙거 왕조카롤링거 왕조의 뒤를 이어 프랑스의 세 번째 왕조(프랑스어: troisième race)를 개창했다고 평가받는다. 그들은 유럽의 다른 국가들을 다스리기도 했다. 더욱이, 모계 후손을 포함한다면 거의 대부분의 유럽 왕조들은 카페 왕조의 후계이다.

프랑스 왕 로베르 2세의 둘째 아들 부르고뉴 공작 로베르 1세를 시조로 한 카페 부르고뉴 가문프랑스의 필리프 3세의 서자 에베룩스의 루이 10세를 시조로 하는 나바르 왕국카페 에브뢰-나바르 가문 역시 모두 카페 왕가의 일원이었다.

카페(Capet)라는 성씨는 카페왕조의 첫 번째 프랑스 왕인 위그 카페의 아버지 위그 르 그랑으로부터 유래했다. 허나 '카페 왕조(프랑스어: Capetièns)'라는 명칭은 왕가에서 사용했던 공식 명칭이 아니다. 이러한 명칭은 역사가들이 만든 것이다. 위그 카페의 시조 가문인 로베르 왕조(Robertiens) 역시 역사가들이 866년에 죽은 네우스트리아 후작인 로베르 르 포르의 이름을 따서 지은 가문명이다.

역사학자 카를 페르디난트 베르너에 따르면, 카페 왕조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남성 상속 왕조이다. 로베르 왕조의 두 명의 왕 오도 1세로베르투스 1세를 포함해서 888년부터 1848년까지 위그 카페의 가문은 프랑스 왕 36명을 배출했으며, 또한 나폴리와 시칠리아 왕 13명, 스페인 왕 11명, 헝가리 왕 네 명, 폴란드 왕 세 명, 룩셈부르크 대공 두 명, 라틴 제국 황제 세 명과 포르투갈 왕 32명 및 브라질 황제 두 명 (단 이 포르투갈과 브라질의 브라간사 가문은 카페 가문의 서출) 등을 배출하기도 했다.

현재 룩셈부르크 대공 앙리 드 뤽상부르와 스페인 왕 펠리페 6세가 카페 왕가에 속한다.

위그 카페 이전, 두 명의 로베르 왕조 가문원이 카롤링거 왕조 사이에서 프랑크 왕위에 올랐는데 바로 외드 1세로베르 1세이다. 두 명의 왕들은 모두 로베르 르 포르의 아들이다. 로베르 르 포르의 가계는 확실치 않으며 여러가지 이설이 존재한다. 몇몇에 따르면 로베르 르 포르는 작센 또는 게르만 기원이다. 20세기에 이뤄진 여러 역사가들의 연구는 로베르 르 포르의 가계와 생애에 대한 가설들과 확실성 여부에 대해 어느 정도 밝혀냈다.

카페왕조 개창 1000년을 맞아 1987년 앙제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사학자 카를 페르디난트 베르네어는 연대기작가 레지농 드 프륌을 증거로 로베르 르 포르의 가계가 라인 지방에 기원을 두고있음을 확인했다. 그의 조상은 다고베르투스 1세의 상서(référendaire) 로베르처럼 메로빙거 왕조 후기에 네우스트리아에서 왕실 관련업 종사를 맡던 큰 가문을 만들었을 것이라고 사료된다. 그리고 764년 사망한 에스바예와 보름스 백작 로베르 1세처럼 아우스트라시아의 카롤링거 가문과 밀접한 친인척 관계를 가졌다고 보여졌다.

987년 프랑크 공작 위그 카페는 랭스 대주교 아달베롱의 열혈한지지로 죽은 루이 5세의 삼촌이자 카롤링거 가문의 하 로렌의 샤를을 제치고 프랑스의 왕이 되었다. 그의 치세는 대귀족들 앞에서 보인 왕의 약한 권력이 특징이다. 위그는 왕국 남부에 개입하지 못했다. 그의 영지와 그가 직접 통치하려 한 몇몇 봉신들에게만 그의 권위가 닿았다.

발루아가 참조

샤를 5세의 아들 오를레앙 공작 루이 1세의 손자 루이 12세가 1498년 직계 왕가의 남계 후손 단절로 왕위에 올랐다.

루이 12세의 삼촌 오를레앙 공작 장의 손자 프랑수아 1세가 1515년 왕위에 올랐다.

부르봉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