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랜태저넷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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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태저넷 가(House of Plantagenet [plænˈtædʒənət][*])는 영국의 왕가 중의 하나로, 앙주 가의 분가이다. 가문 이름은 시조 잉글랜드의 헨리 2세의 부친 앙주 백작 조프루아 플랜태저넷이 항시 투구에 금작화의 가지 (라틴어: Planta Genista)를 꽂고 나섰던 것에서 유래하여 셰익스피어가 붙인 이름이다. 플랜태저넷이라는 표현 자체는 조프루아 이후에는 쓰이지 않다가 1460년경 요크 공작 리처드가 자신의 왕위 계승권을 강조하기 위해 다시 이 표현을 자신의 별칭으로 썼다.[1]

가티네 지방에서 시작해서, 11세기 무렵에 결혼을 통해 앙주 백작령의 지배 가문이 되었다. 이후 영지를 차츰 늘려가기 시작해 12세기 무렵부터 잉글랜드 왕국의 왕위를 계승하였고, 최절정기에는 피레네 산맥에서부터 아일랜드를 포함해 스코틀랜드와의 국경까지 앙주 제국으로 불리기도 한 광대한 영토를 다스렸다.

방계인 랭커스터 왕가요크 왕가를 포함해 전체 15명의 군주를 배출하며 1154년에서 1485년까지 왕위를 이어갔다. 본가는 헨리 2세에서부터 리처드 2세1399년에 폐위될 때까지이며, 이후 랭커스터 왕가에서 3명의 군주가 나왔고, 이후 요크 왕가에서 3명의 군주가 배출되었다. 요크 왕가의 리처드 3세장미 전쟁 중인 1485년 보즈워스 전투에서 사망하면서 왕위가 끊겼으며, 그의 조카 워릭 백작 에드워드가 1499년 처형되면서 적통마저 끊겼다.

근 300년 간의 플랜태저넷 왕가의 시대 동안 영국 고유의 문화와 예술이 태어났는데, 영시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프리 초서가 왕가의 후원을 받으며 활약한 것과 웨스트민스터 사원과 요크 민스터 대성당의 고딕 건축도 이 시대였다.

프랑스 왕국의 지배권을 놓고 발루아 왕가와 다툰 100년 전쟁과 왕위 계승 문제로 다툰 장미 전쟁으로 점철된 다사다난한 시기이기도 했다. 몇몇 왕들은 그 자신들이 전사로 유명했는데, 아쟁쿠르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둔 헨리 5세제3차 십자군에서 사자심왕이라는 별명을 얻으면서 영국 전래 문학에서 기사도의 상징이 된 리처드 1세가 대표적이다.

헨리 2세는 앙주, 아키텐 등을 포함한 대영토를 지배하며 국내에서는 일련의 행정 개혁을 실시하여 봉건 왕정을 확립하였으나, 그 후 왕의 전제 정치가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그의 막내 아들인 존 왕은 실정을 거듭하여 대륙의 영토를 잃었고, 귀족의 반항으로 마그나 카르타를 인정하고 타협하였다. 헨리 3세 때 왕의 전제에 반항하는 귀족 연합은 신흥 상인·기사들을 의회에 소집하여 왕권을 제한하였으며, 에드워드 1세는 귀족과 협조하여 일련의 제정법에 의해 봉건사회를 정비하였다.

에드워드 3세백년 전쟁 이후에 왕권이 실추된 반면 시민·상인층이 점차 성장하여 봉건사회를 변동시키게 된다. 특히 1381년의 농민 반란이 상징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