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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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주식회사 케이티, 영어: KT Corporation)는 국내 최대 통신사이자 디지털 플랫폼 기업으로 ICT, 금융사업, 위성방송서비스사업, 기타사업(콘텐츠, 부동산, 커머스 등) 등을 영위하고 있다. 무선통신, 초고속인터넷, IPTV 등 핵심사업에서의 지속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IDC, 클라우드, AI/DX 등 B2B 성장사업에서도 성과를 창출하였다. 본사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불정로 90 (정자동)에 위치한다. 1981년 한국전기통신공사로 창립한 뒤 2001년 12월에 상호명을 한국통신에서 (주)KT로 변경하였다.[1] 2009년 6월 1일에 이동 통신 서비스를 제공한 KT의 자회사인 KTF와 인수 합병을 하였고,[2] 2011년 7월에 유·무선 통신 서비스 조직을 통합하였다.[3]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 등에 관한 법률상 독과점 사업자로서 시장지배적 사업자 지위 남용 규제를 받는다. 통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여는 GiGA 인터넷 가입자 100만을 가장 먼저 달성하였다. KT가 보유한 AI, 빅데이터, Cloud, IoT, 로봇 등의 ICT 융합 기술력을 기반으로 미디어콘텐츠, 금융, 커머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통신과 이종 산업간의 시너지 창출로 디지털 플랫폼 사업을 추진 중이다.

1997년 금융 위기에 따라 경제위기 수습을 위한 재원 마련으로 공기업 매각이 추진되어 1998년 12월 한국증권거래소, 1999년 5월 뉴욕증권시장에 상장되었다. 전기통신사업법에 의해 기간통신사업자에서 외국인 주주의 의결권을 다 합쳐도 총 의결권의 49%를 넘을 수 없게 되어 있다. 이사회는 사내이사 3명, 사외이사 8명 총 11명의 이사로 구성(2013년 3월 기준)되어 있다. 사외이사는 사외이사 전원, 사내이사 1인으로 구성된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서 선임하고 있으며, 임기는 3년 이내이다. 이사회 의장은 사외이사 중에서 선출되며, 임기는 1년이다. 이사회 내에는 5개 상설 소위원회와 2개 임시 소위원회가 있다. 이사회는 필요한 경우 별도의 위원회를 추가 설치할 수 있다. 사내이사(3명)로는 구현모 대표이사, 박종욱 이사, 강국현 이사가 있고 사외이사(8명)로는 이사회 의장인 유희열 이사와 이강철, 김대유, 표현명, 강충구, 박찬희, 성태윤, 여은정 이사가 있다.

유무선 통신 전문 공기업에서 출발한 KT는 민영화 이후 2015년 그룹 매출 40조원 달성을 목표로 렌탈, 부동산, 경비, 교육, 신용카드 등 다양한 비통신 시장으로 진입하고 있다. 2015년 9월 30일 기준으로 BC카드 등 41개의 자회사[22]를 운영 중이다.

2003년 진대제 정보통신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의 종량제 찬성 인터뷰에서 촉발한 종량제 논의가 EBS 인터넷 수능 동영상 강의 등 트래픽 유발 서비스 확대와 스팸 메일, 인터넷 중독 등의 사회적 논란 등을 겪으면서 2005년까지 계속되었다. 2005년 KT 이용경 사장이 정보통신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의 네티즌과의 대화에서 밝힌 인터넷 종량제 정책 추진 등에 부응하여 인터넷 요금의 종량제 필요성을 함께 주장하여 사회적인 논란이 확대되었다.

KT는 4G LTE 주파수 재배치의 일환으로,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최종 승인으로 2011년 12월 8일 2G CDMA 서비스 종료를 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4G LTE 주파수 재배치 문제로, 이 과정에서 기존 01X 번호를 사용하는 사용자의 의사와 전혀 상관 없이, 강제 종료를 한다는 논란의 소지가 많았다. KT의 2G 서비스는 당초 2011년 12월 8일에 전국적으로 일제히 종료할 예정이었으나, 서울행정법원의 합법적인 절차로 계속 순연되어, 같은해, 12월 26일 서울고등법원의 즉각 중단 가능 결정으로 2012년 1월 3일 오전 10시경, 수도권 및 부산/경남권 지역부터 순차적으로 2G CDMA 서비스가 종료되고 4G LTE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1996년에 국내에서 최초로 상용화된 CDMA 서비스의 선두주자로 불렸던 SK텔레콤의 2G CDMA 서비스는 시스템 노후화로, 7년 뒤인 2020년 7월 말에 최종 종료한 바 있다.

정관계 인사들의 KT 고위 임원에의 연이은 취임이 2010년 12월 김은혜 전 청와대 대변인의 KT 전무 취임으로 사회적으로 확산되었다. 또한 이를 비판한 직원의 발언이 PD 수첩 등에 방영된후 해당 직원에 대한 보복 인사에 대한 논란도 있다.[46][47][48] 이석채 회장은 비통신 전문가인 외부 인사 영입에 대한 논란에 대해 2011년 1월 20일 기자 간담회에서 내부에 인재가 없어 외부 영입을 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는 입장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신사업을 할 수 있는 KT 내부 직원은 없다고 단언하며 외부 인사 영입 논란을 일축하였다.[49][50]

2011년 11월 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KT가 100% 지분을 갖고 있는 자회사인 KT캐피탈은 2011년 3월 9일 조선일보 종편에 20억원을 출자했다. 이어 4월 1일에는 중앙일보와 매일경제 종편에 각각 20억원씩 출자했고 엿새 뒤인 4월 7일에는 당시 납입 자본금을 완납하지 못해 종편 승인이 연기된 동아일보 종편에 앞의 종편들보다 많은 23억9천만원을 출자했다.

문제는 KT가 2010년 말까지만 해도 전담팀에서 사업성을 평가한 결과 사업성이 없어 종편에 투자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는 점에서 입장을 바꿔 4대 종편 모두에 무더기투자를 한 배경에는 정부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낳고 있다.[51]

2012년 4월 25일 노동시민사회단체인 KT노동인권센터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KT에서 인력퇴출프로그램이 시행된 2006년부터 2012년까지 6년 동안 KT 재직·퇴직 노동자 가운데 204명이 숨졌다. 이 중 재직중에 숨진 노동자가 110명이며 퇴직자(58세 이하)가 94명, 사내협력업체 12명이다. 사망 원인별로는 백혈병 등 각종 암으로 숨진 노동자가 84명으로 가장 많았고 돌연사(뇌출혈·심장마비)가 62명, 사고 및 기타 질병 44명, 자살 14명이었다. KT노동인권센터는 인력보충 없는 강제명퇴와 무한경쟁 등을 초래한 민영화가 노동자들의 잇따른 사망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고용노동부는 2011년 10월 국정감사에서 KT 노동자의 인권침해 문제가 제기된 후 노조의 고소·고발이 이어지자 2012년 2월부터 한 달간 150여개 지사를 대상으로 특별감독을 벌였지만 2012년 4월까지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고 있다.[52]

2021년 4월 17일 유튜버 잇섭이 사용하는 10기가 인터넷 요금제가 실제로는 100메가로 서비스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폭로하였다. 잇섭은 영상에서 속도 테스트에 대한 자료를 공개했다. 이후 논란이 기사화되며 KT 사용자들이 반발한 사건이다.[53]

2021년 4월 19일 KT측은 "최근 스튜디오를 이사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류로 인해 고객의 정보가 잘못 이관되었다"면서 "이 때문에 100메가밖에 제공되지 않았을 것"이라 해명했다. 이어 6시에 열린 미팅에서 공식적으로 고객에게 불편을 끼쳐드린 점을 인정하고 사과했다.[54]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고객의 실수 등 외부적인 요인 때문에 사건이 발생했는지, 아니면 KT측에서 약관을 위반해 의도적인 잘못을 했는지 사실확인 후 제재를 가할 것이며 필요 시 실태조사 진행을 통해 개선점을 찾아 개선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22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도 이번사건을 통해 실태조사를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55]

2021년 10월 25일 오전 11시 20분부터 최대 12시 45분까지 최대 1시간 25분, 평균 약 40분가량 유무선 인터넷 서비스 장애가 발생하였다. 오전 첫 번째 입장문에서는 DDoS 공격으로 인한 것으로 추정하였으나 오후 두 번째 입장문에서는 라우팅 오류가 원인이였다고 밝혔다.[56]

이에 대해 KT는 이 사건에 대해 밝힌 입장문이 담긴 글을 공식 홈페이지에서 팝업을 띄워 공개했다.

안녕하세요. KT 입니다. 통신장애로 고객 여러분께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금일 장애내역은 아래와 같습니다.

ㅇ 장애일시 : 2021년10월 25(월) 11:20~ 최대 12:45 (지역별로 복구시간은 차이가 있음)

ㅇ 대상지역 : 전국

ㅇ 장애관련 영향도 : 인터넷 서비스

장애로 인한 불편이 재발되지 않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1982년부터 1990년까지 사용된 로고
1991년부터 2001년까지 사용된 로고